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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국철 신칸센(新幹線)으로 일본을 종단하다
글번호  77, (조회 : 797)
글쓴이  최규완 박사 날 짜  2018/06/27 (11:18)
상미회의 명품여행가운데 하나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 고속국철 신칸센여행을 가보기로 작정했다. 몇 년 전부터 소개되어왔고, 또 다녀온 분들에게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터이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고 싶었지만 매번 이것저것 생각하며 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쳤다. 이번에는 김진억(金鎭億)변호사 내외분과 장규찬(張圭讚)화장 내외분이 같이 가겠다는 의사를 밝힘으로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4월 18일에 출발하는 팀과 4월 20일에 출발하는 팀이 있었는데, 18일 팀은 가고시마(鹿兒島)의 하쿠슈간(白水館)온천호텔을 들르고, 20일 팀은 그 대신 아오모리(靑森)의 현립 미술관을 관람하는 일정으로 짜여 있었다. 실은 18일 팀으로 가고 싶었으나 벌써 20명의 정원이 차버려서 20일 팀으로 예약을 했다. 도중에 혹시 18일 팀에 예약취소가 생기면 그 쪽으로 합류하고 싶었으나 6명이 한 거번에 옮기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런데 여행 도중에 안 사실이지만 18일 팀은 그 기간이 주말이고 일본인들의 국내여행이 너무 많아 여정에 있던 아키다(秋田)행의 열차편예약을 하지 못하여 도쿄(東京)에서 이틀을 지내는 일이 벌어졌다니 우리가 그 팀에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이번 여행도 여느 상미회의 여행과 같이 고급스러웠으나 결코 화려한 여행은 아니었고, 3,000여km를 기차로 달리다보니 단조롭기는 하였으나 결코 지루하지는 않았다. 도보로 이동하는 거리가 많아서 고단하기는 하였으나 정갈한 온천욕과 쾌적한 잠자리가 있어 결코 피로가 쌓이지는 않았다. 여러 곳의 미술관에서 다양한 미술품을 감상하는가하면 오래된 정원과 고택을 방문하여 유물에 담겨있는 역사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최고급의 호텔과 유서 깊은 온천을 전전하며 하루의 묵은 떼를 벗기며 식도락을 즐겼다. 철도여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관찰할 수 있었으나 다만 여행 후반에는 기후가 밭쳐주지 않아 일본의 서북해안, 즉 우리나라의 동해바다 쪽의 경치는 잘 볼 수 없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좋은 것을 한 거번에 다 주시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 여행기를 쓰는 것은 여행을 끝낸 지금 일주일간의 여행을 처음부터 꼼꼼하게 따라가면서 복습을 함으로써 웃돈을 더 들이지 않고 다시 한 번 여행의 감동을 누려보기 위함이다. 마치 바둑 기사들이 대국이 끝난 뒤에 그 내용을 복기(復碁)함으로써 내용도 즐기고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기 위함이다. 여행내용의 사실관계는 수집한 자료와 필자의 기억력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혹시 털린 데가 있으면 가르쳐주셔서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해주기를 바란다. 또 여행내용의 호불호(好不好)에 관한 의견은 순전히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에 따른 것이므로 많은 분들로부터 공감을 받을 수 없을 런지 모른다. 그러나 몇 사람의 의견이라도 밝힘으로써 이 여행상품에 대한 되먹이기(Feedback)가 이루어져서 앞으로의 상품개발에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I. 교통 (기차와 버스)

이번 여행에서 육상으로 이동한 거리는 약 3,000km가 되는데 그 대부분 구간은 일본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신칸센(新幹線) 고속열차로 이동하였다. 만 7일간 언제든지 특실(Green Car)을 이용할 수 있는 일본열차패스(JR Rail Pass)를 구입했으나 주말이 겹쳐서 여행객이 넘쳐나는 구간에서는 자유석 혹은 2등 지정석 밖에 차지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시내에서는 웬만한 거리는 걷고, 시내버스나 택시를 탄 때도 있었고, 시내의 전철을 탄 때도 있었다. 멀리 이동할 때는 대절한 관광버스나 호텔의 전용버스를 이용했다.

1. 후쿠오카(福岡)에서 아오모리(靑森)까지

전 구간에 신칸센이 깔려있었지만 구간에 따라 신칸센의 노선명이 달랐다. 하카다(博多)에서 신오사카(新大坂)까지는 산요신칸센(山陽新幹線), 신오사카에서 도쿄(東京)까지는 도카이도신칸센(東海道新幹線), 도쿄에서 신아오모리(新靑森)까지는 도호쿠신칸센(東北新幹線)으로 관리하는 회사가 각각 다르다고 했다.

후쿠오카공항에서 하카다역까지는 일반시내버스를 이용했는데 시간대가 좋아서 짐을 가지고도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하카다에서 오카야마(岡山)까지는 산요신칸센 Sakura(櫻, 벚꽃)호로 이동하였는데, 지정석예약이 되지 않아 자유석을 탔다. 자리를 잡기까지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일단 자리를 잡으니 지정석이나 다름없이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오카야마 시내에서는 숙소에서 고라쿠엔(後樂園)에 갈 때에는 도보로, 올 때에는 시내버스를 이용했는데 그 재미 또한 괜찮았다.

오카야마에서 도쿄까지는, 산요신칸센으로 신오사카까지, 거기서 도쿄까지는 도카이도시칸센으로 갔지만 기차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갔다. Hikari(光, 빛)로 이름 붙인 객차의 특실 지정석이 예약되어 Green Car의 호사를 누리면서 그 경관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 오카야마를 떠나 얼마 되지 않아 오른쪽으로는 세도나이가이(瀨戶內海)의 바다가 가끔씩 보이더니 히메지(姬路)에서는 왼쪽으로 멀리에 히메지죠(姬路城)가 마치 동화에서 나오는 요정의 성처럼 나타났다가 살아졌다.

오사카와 나고야(名古屋)를 지나 시즈오카(靜岡)에 와서는 왼쪽에 펼쳐진 산야와 차밭을 보고 있었는데, 후지역(富士驛)에 가까이 오니 갑자기 큰 산 덩어리가 나타났다. 머리에 세로줄무늬가 있는 하얀 모자를 쓴 늠름한 자태의 산이 바로 코앞에 나타났다. 옅은 구름이 그 얼굴에 덮였다 개였다 지나갔다. 이번 여행에서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후지산(富士山)이 그 얼굴을 보여준 것이다. 과거에도 후지산은 여러 각도에서 여러 번 보아왔지만, 이 번과 같이 그렇게 가까이에서 산 전체가 그림과도 같이 지나가는 모양은 처음 보았다. 옆자리에 앉은 집사람과는 마음껏 경치를 즐겼지만 나의 감탄소리에 자다가 깨어난 동행자들은 그저 덤덤하게 후지산이군 하는 반응이었다. 기차가 미시마역(三島驛)을 지나갈 때까지 왼쪽 뒤편으로 멀리보이는 백발의 영산(靈山)을, 앞에 앉은 작은 산들이 훼방을 놓을 때까지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이른 바 후지하코네국립공원(富士箱根國公園)을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면서 지났더니 어느덧 도쿄에 도착했다. 도쿄역에서 제국호텔까지의 왕복은 미리 대절해둔 택시를 이용했으며, 국립서양미술관까지의 교통은 국철 히비야선(日比谷線)으로 히비야역(日比谷驛)에서 우에노역(上野驛)까지를 왕복했다. 40여 년 전 내가 도쿄에서 공부할 때 제일 많이 탔던 전철노선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도쿄에서 아오모리까지는 도호쿠신칸센 Hayabusa(早隼, 매)호를 탔는데, 지정석이기는 하였으나 특실은 아니었다. 하야부사란 뜻은 재빨리 날라서 새사냥을 하는 매(早隼)와 같이 빠르다는 뜻이란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랫동안 탔던 기차길이었으나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2. 아오모리(靑森)에서 무라가미(村上)까지

아오모리시내에서의 교통은 호텔버스를 이용했으므로 아무런 불편도 없었다. 여기까지의 기차여행은 일본이 자랑하는 신칸센 여행이라 아주 좋았다. 그러나 아오모리에서 아키다(秋田)까지의 여행은 좀 달랐다. 일본국철 오우본선(奧羽本線)의 특급열차 Tsugaru(津輕)호를 탔다. 이 이름은 이열차가 지나가는 쯔가루평야(津輕平野)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월요일 아침의 출근시간이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신 아오모리에서 히로사키(弘前)까지의 구간에는 지정석 칸에도 입석(立席)이 허용되어 발 디딜 틈도 없이 승객을 가득태운채로 30여분을 달렸다. 이 열차에는 화장실도 더럽기 짝이 없었다. 오물이 뒹굴고 악취가나서 불쾌하기 거지 없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명절 때 만원열차를 탔던 생각이 났다.

이케다에서 사카다(酒田)까지는 미리 예약된 관광버스로 갔다. 사카다에서 무라가미까지는 일본국철 우에쓰본선(羽越本線)의 급행열차 Inaho(稻藁, 벼이삭)로 이동했다. 이나호란 뜻은 벼이삭, 또는 볏가리(稻穗)를 의미하는데 이 열차가 곡창 쇼나이평야(庄內平野)를 지나가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 했다. 이 열차에서는 특실의 지정석이 예약되어 아주 편안한 여행을 했다. 이 철도는 일본의 북서해안을 끼고 운행함으로 오른쪽으로 좋은 바다경치를 볼 수 있었을 텐데, 계속 비가 내리는 바람에 그 뜻은 접어야 했다.

3. 무라가미(村上)에서 나리다(成田)까지

무라가미에서 니이가타(新瀉)까지는 다시 전세 관광버스로 이동했고, 니이가다관광을 마친 뒤 니이가다에서 에치코유자와(越後湯澤)까지는 죠에Tm신칸센(上越新幹線)으로 내려갔다. 이 열차는 Max Toki(朱鷺)호로 복층로 된 열차였다. 2층은 특석 지정석으로 아주 편했다. 에치코유자와 시내에서는 호텔전용버스가 준비되어 있어 이 버스로 시내구경도하고 물건사기도할 수 있었다. 에치코유자와에서 도쿄까지는 역시 죠에쓰신칸센 Toki(朱鷺)호의 특실을 탈 수 있었다. 도키란 뜻은 국제보호조 도키(朱鷺)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 새는 니이가다 북쪽에 있는 사도지마(佐渡島)에 살고 있다. 이 새가 지금 멸종위기에 있어 이 새를 살려내자는 뜻으로 붙인 것이라고 했다.

도쿄에서 나리다공항까지는 나리다(成田)Express의 Green Car를 이용했다.


II. 숙소(호텔과 온천여관)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일본에서 여섯 밤을 보냈다. 세 밤은 서양식호텔에서, 그리고 나머지 세 밤은 일본식 온천여관에서 잤다.

1. 서양식 호텔

오카야마의 Granvia Okayama Hotel과 아키다의 Hotel Metropolitan Akita는 모두 역사(驛舍)에 바로 붙어 있어서 짐을 끌면서 도보로 갈 수 있는 편리한 곳이면서도, 그 지방에서는 가장 좋은 고급 호텔이었다. 한편 도쿄의 데이고쿠호텔(帝國호텔, Tokyo Imperial Hotel)은 그 명성에 걸 맞는 환상적인 호텔이었다. 도착한 날이 바로 토요일인데다가 마침 결혼식이 있어 호텔로비는 상당히 복잡했지만 객실내의 시설과 분위기는 최상급이었다. 곳곳에 걸려있는 그림도 그러하고 침대나 욕실도 수준급이었다. 무엇보다도 욕실에 비치된 세면도구, 수건, 잠옷 등은 역시 일본 최고호텔의 면모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외부에서 보기에 건물이 단조롭고, 정원이나 휴식공간이 없는 것이 흠이었으나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히비야고엔(日比谷公園)이 그 역할을 해주었다. 우리내외는 아침 일직 일어나, 조찬을 들고 출발준비를 하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그 공원 산책에 나섰다. 마침 화창한 날씨에 여러 가지 색의 꽃이 만발한 공원에는 적당한 크기의 연못과 의자들이 널려있어 쉬었다가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공원입구에 있는 꽃가게에서는 연인들이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두었다. 우리가 지나가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나와서 우리 늙은 구혼부부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2. 일본식 온천여관

온천여관은 아오모리의 아사무시(淺虫)온천을 끼고있는 가이센가쿠(海扇閣)여관, 무라가미의 세나미(瀨波)온천을 가진 다이간소(大觀莊)여관, 그리고 에치고유자와의 유자와(湯澤)온천물을 끌어다 쓰는 다키노유(瀧노湯)여관 등 세 곳에서 하루 밤씩 쉬었다. 그 가운데 온천물이나 시설은 아사무시온천이 좋았지만, 여관의 시설이나 친절하고 격조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 것은 타키노유가 으뜸이었다.

아오모리의 아사무시온천은 헤이안(平安)시대 끝 무렵인 1190년에 원광대사(圓光大師)가 이 지방을 방문했을 때 부상당한 노루 한 마리가 목욕을 하는 것을 발견하고 온천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베를 짜는 삼(麻)을 찌는 데만 이 더운물을 사용하던 시골사람들에게 목욕하는 법을 가르쳐주어 온천으로 발전시켰다는데, 에도(江戶)시대에는 쯔가루한(津輕籓)의 번주들도 온천욕을 위하여 이곳을 들렀다고 한다. 호텔 9층에 자리 잡은 온천에는 로텐후로(露天風呂)가 설치되어있어 멀리 쯔가루해협과 바로 길 건너에 자리 잡은 유노시마(湯乃島)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무라가미의 세나미온천에 있는 다이간소여관은 세나미노유(瀨波乃湯)여관이란 별칭을 쓰고 있다. 대욕장의 노천탕 뿐 아니라 객실에서도 서쪽바다(日本海, 우리나라의 東海)를 내려다볼 수 있어 석양에는 낙조(落照)가 일품 경치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머무를 때는 잔뜩 찌푸린 날씨 탓으로 바다경치 보는 것은 포기했지만 새벽녘에 일어나서 바로 여관과 연결되어있는 해변 백사장을 거닐 수 있었다. 참 좋은 아침이었다. 여름에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리조트로는 더없이 좋은 곳으로 보였다.

에치코유자와의 타키노유여관은 온천물의 질이 다소 떨어졌지만 격조 높은 여관이었다. 처음 입실할 때 향긋한 냄새를 살짝 맡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차와 과물(果物)이 적당히 준비되어있었다. 사사유키(笹雪)란 빵과 과자 한 조각은 입욕전의 달콤한 선물이었다. 목욕과 식사가 끝난 뒤 방에 들어오니 넓은 다다미(疊)방에 이부자리가 예쁘게 깔려있었다. 이런 것 모두 우리가 배워야할 것들이다. 물론 다른 온천여관에서도 같은 서비스를 해주었지만 격조가 조금씩 달랐다. 다음날 아침 우리가 퇴실할 때에는 이 여관의 안주인 나가마쯔 유미코(長松由美子) 죠쇼(女將)가 전날 밤 만찬장에서 찍은 사진을 나눠주고, “사사유키” 한 통 씩을 선물로 주는 지혜도 가졌었다. 뿐 만 아니라 직접 큰 버스를 운전해서 우리 일행이 관광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 조그마한 온천여관을 다시 찾게 하는 비결이 이런데 있는 것 같았다. 유자와온센(湯澤溫泉) 나고미노 오야도(和노 오宿) 다키노유(瀧乃湯)라는 긴 이름을 내걸 만했다.


III. 식음(식도락 문화)

1. 조찬

하루만 빼고 5일간 매일, 호텔에서 주는 아침밥은 모두 뷔페음식이었다. 호텔이 일류이니 음식도 모두 최고급이라, 나와 같이 식탐이 많은 사람에게는 큰 고민이었다. 여행을 끝내고 집에 와서 보니 2.5kg의 체중이 늘어있었다. 조찬으로는 여러 종류의 음식이 나왔으나 주로 일식을 들었으나 문제는 양이었다. 적당한 운동을 하고 다녔으니 식욕이 더욱 왕성해져서 더 많이 먹게 된 것이다.

마지막 날 에치코유자와 다키노유여관에서 제공한 조반은 아침죽정식(朝粥定食)이었는데 이것이 이번 여행에서 먹은 가장 맛있고, 행복한 음식이었다. 우오누마(魚沼)평야에서 재배된 고시히카리(越光)쌀로 천천히 시간을 들여 끓이므로 쌀이 가진 참맛이 살아있는 부드러운 식감의 죽이 나왔다. 여기에 산나물과 해산물로 만든 각각 네 가지씩의 반찬을 우아한 백자그릇에 담고 이 여덟 가지의 접시를 두 개의 찬합에 꽃모양으로 배열하여 담음으로써 음식이 하나의 예술품이란 느낌을 주었다. 다키노유 온천여관을 좋아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이다.

2. 오찬

점심으로는 두 번의 에키벤(驛弁)과 네 번의 일반 식당음식이 제공되었다. 에키벤은 기차간에서 먹는 도시락음식으로서 젊었을 때 일본여행을 하면서 먹었던 생각이 나서 많은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도쿄에서 신아오모리까지 가는 도호쿠신칸센 기차안에서 먹은 도시락은 도쿄역의 에키벤 전문점에서 산 것이라 음식의 질이 별로 좋지 않았다. 신아오모리에서 아키다까지 가는 오우본선의 기차간에서 먹은 도시락은 미리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에, 기차타기 직전에 에키벤야(驛弁屋)사장이 직접 역사로 배달해주었기 때문에 음식도 신선하고 맛도 있었다. 다만 처음 그 기차를 탔었 때 경험한 복잡하고 냄새나던 생각이 떠올라 에키벤의 흥은 반감했다.

하카다역에서는 Kitte라는 상가의 10층에 있는 다지마야(但馬屋)에서 샤부샤부정식을 들었고, 도쿄에서는 역구내의 수시고노미(壽司好) 나고미(和)에서 생선초밥을 먹었다. 사카다에서는 호코데이(芳香亭)에서 가이세키(懷石)코스점심을, 그리고 에치코유자와에서는 시오자와(鹽澤)소바도고로(藁麥處) 다바다야(田畑屋)에서 소바정식을 먹었다. 쯔키지(築地)시장에서 바로 사온 천연 혼마구로(다랑어)를 자랑하는 수시고노미 和의 생선초밥정식이나, “소바(藁麥)의 꽃을 마음에 피우는” 소바도고로를 자처하는 田畑屋의 소바정식도 맛있었지만 역시 점심의 꽃은 사카다 호고데이의 가이세키(懷石)코스점심이었다. 호고데이는 산교쇼고(山居倉庫)의 12호동에 있는데, 에도(江戶)말기 1854년에 창업하여 150여년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그때 쓰던 철기(鐵器)가 보존되어있고, 초대 여장 이케다요시요(池田吉代)가 창업당시 사용한 “芳香亭”이란 옥호를 지금도 쓰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의 음식은 해산물이 주된 재료이었는데 그 선도(鮮度)가 뛰어났으며, 맛 또한 일품이었다. 음식점의 분위기 또한 그러했다.

3. 만찬

이번여행의 중요목표중 하나가 일본식도락문화의 탐구에 있다. 이미 지적한대로 다키노유여관에서의 정성스러운 朝粥定食과 호고데이에서의 晝食 懷石定餐만으로도 이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지만 6일간의 만찬에서 본격적인 일본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여행경비에 주류를 포함한 여러 가지 음료의 비용은 계상되지 않아 각자가 주문한 음료는 개별적으로 계산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래서 내가 매인당 5,000엔씩을 갹출하여 공동경비로 사용하여 이 번거로움을 피하면 어떻겠는지를 물었더니 모두가 찬성하였다. 이에 신용직 이사는 그렇게 하고 만일 경비가 부족하면 상미회에서 부담하겠다고 화답하였다.

첫째 날 저녁은 Hotel Granvia Okayama의 Cafe Restaurant Olivier에서 간단한 서양식정찬이 제공되었다. 오랜 여행과 넓은 정원의 산책으로 쌓인 피로를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풀기로 했다. Asahi생맥주가 한잔씩 돌아왔다. 이에 만찬건배사를 누군가가 해야겠는데, 살펴보니까 신 이사를 빼면 여섯 명의 남성이 참석했고 남아있는 저녁의 회수도 여섯 번이어서 나이순대로 남자가 한사람씩 건배를 제의하도록 하자고 했다. 모두가 찬성하니 첫 날은 제일 연장자인 목영일 아주대학교 명예교수께서 축배를 제의했다.

둘째 날은 Tokyo Imperial Hotel의 Parkside Restaurant에서 본격적인 프랑스식 정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 만찬에는 상미회를 위한 차림표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음료로는 California의 Livermore Valley에서 생산한 2015년도 산 "Wente"가 한 병 준비되어 있었다. 두 번째 연장자인 김진억 변호사의 건배사로 시작된 만찬은 말 그대로 화기애애한 가운데 이국의 정취를 흠뻑 느끼면서 진행되었다.

셋째 날은 아오모리의 아사무시온천(淺蟲溫泉)에 있는 가이센가쿠여관에서 일본식 정찬이 차려져 있었다. 푸짐한 가이세키요리었다. 만찬주로는 그 지방의 명주(銘酒)인 “덴슈(田酒)”를 맛보기로 했는데, 마침 그 여관에는 품절이라 그곳에 가는 길에 있는 주류 판매상을 여러 곳 섭렵한 끝에 겨우 두 병을 구입했다. 그날의 건배사를 맡은 장규찬 회장이 거금을 희사하여 산 이 청주는 정미보합(精米步合)이 55%인 토쿠베쯔 쥰마이슈(特別純米酒)로서 고급 일본 주이었다. 만찬장소가 마침 나미노 우다(波노詩)라 장회장은 건배사에서 한시(漢詩) 한 수를 읊어 흥을 돋우었다.

넷째 날은 Hotel Metropolitan Akita의 Dining Room인 만요(万葉)에서 “아키다(秋田)의 소재를 사용한 화양절충(和洋折衷)의 요리”를 들었다. 반주로는 그 전날 장회장이 희사한 “덴슈(田酒)”의 가라구찌(辛口)를 마셨다. 그날의 건배사는 나의 차례였다. 우선 남의 술로 건배하는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그 전날 아오모리에서 감상한 Chagall의 Aleko무용 배경화에 대한 소감을 피력하면서, “나가자”란 구호로 건배를 제의 했다. “나”는 나라를 위하여, “가”는 가정을 위하여, “자”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란 뜻으로.

다섯째 날은 무라가미의 다이간소 온천호텔에서 해산물 위주의 가이세키(會席)만찬을 들었다. 각종의 싱싱한 해산물을 아낌없이 사용하여 온갖 음식을 만들었으니 그 맛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날은 어재희 정진무역 회장님께서 건배를 할 차례여서 이지방의 명주 “고시노간바이(月乃寒梅) 사이(灑)” 한 병과 “구보다(久保田) 만슈(萬壽)” 한 병을 희사하여 일본 청주의 진미를 맛볼 수 있었다. 잔설이 덮인 니이가다(新瀉) 기다야마(北山)에 한 송이 꽃을 피운 매화의 늠름함과 같이 아름다움을 꿰뚫는 한 잔의 술이 있으니 곧 고시노간바이이다. 쥰마이(純米) 긴죠(吟釀)로 정미율이 55%인 상품의 청주인데, 새로이 선보인 “사이(灑)”는 섬세하면서도 색깔 있는 술이다.

마지막 날은 죽림(竹林)에 둘러싸여 맛좋은 요리가 자랑이라는 에치코유자와의 다키노유(瀧乃湯)여관의 와라쿠노마(和樂노間)에서 일본 최고의 가이세키료리(會席料理)를 들었다. 차림표(御品書기)를 보면 식전 주와 전채로 시작하여 밥과 국 그리고 디저트까지 무려 13개의 코스에 20가지 이상의 음식이 나열되어 있었다. 10가지 이상의 해산물, 돼지고기, 죽순, 야채, 과일 등을 굽고, 찌고, 조리고, 튀기면서 독특한 조리법으로 만들어낸 음식물은 가히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음식의 양도 푸짐하여, 웬만해서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 필자도 돼지고기 몇 점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물론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때 벌써 2kg이상의 체중이 늘어있어 위험신호를 받고 있던 터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일본 식도락여행의 진수를 보여준 마지막 만찬이었다. 마지막 날의 건배는 김동길 Ashram II그룹회장의 차례여서 우선 식전주로 나온 석류주로 시작하여 그 전날 남은 청주와 맥주 등으로 목을 축이었다. 벌써 집에 갈 시간이 다되어서인지 술을 찾은 분이 없어졌다. 어회장이 희사한 구보다 만슈 한 병은 온전히 남아 있었는데, 신이사를 위시한 여러분이 이를 아꼈다가 내가 집에 가져가도록 배려해주었다.


IV. 유적지 탐방

1. 오카야마 고라쿠엔(岡山 後樂園)

오카야마시의 고라쿠엔은 이시가와겐(石川縣) 가나자와시(金澤市)에 있는 겐로쿠엔(兼六園), 이바라키겐(茨城縣) 미도시(水戶市)에 있는 가이라쿠엔(偕樂園)과 더불어 일본의 삼대정원으로 꼽히고 있다.

에도(江戶)시대에 오카야마 번주 이케다 쓰나마사(池田 綱政)가 1700년에 건설한 회유식정원(回遊式庭園)이다. 오카야마죠(岡山城)를 끼고 흐르는 아사이가와(旭川) 바로 건너편에 있는 144,000 평방m에 이르는 섬에 번주의 정양, 빈객의 접대 등의 목적으로 지은 다이묘정원(大名庭園)으로 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정원이다. 성채의 뒤에 있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고엔(後園) 혹은 고고엔(御後園)이라고 불렀으나 1871년에는 “근심을 먼저하고 나중에 즐거움을 누린다(先憂後樂)”는 정신아래 조성되었다는 점이 강조되어 고라쿠엔(後樂園)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후 이정원은 1884년에 오카야마현 소유로 되어 일반에 공개되었고 1952년에는 국가가 특별 명승지로 지정하였다.

쓰루미바시(鶴見橋)로 아사히가와를 건너서 공원의 정문에 들어서니 오카야마성의 예쁜 모습이 우뚝 서있고, 잘 가꾸어진 잔디밭, 연못, 나지막한 동산, 바위들로 만들어진 오솔길, 그리고 그 돌계단 사이사이에 핀 연산홍과 분홍색 철쭉 등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안내 표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제일 먼저 오른쪽에 엔요테이(延養亭)란 정자가 나오고 그 뒤에는 노(能)전통무대가 설치되어있었는데 여기에는 출입이 통제되어있어 밖에서만 보고 사 진을 찍었다. 이곳은 영주가 이 정원을 찾을 때나 손님을 접대할 때 머무는 곳으로, 그 정자에 앉아서 바라보면 사와노이케(澤之池), 유이신잔(唯心山), 그리고 정원 밖으로 미사오야마(操山) 등 정원내외의 경치를 한눈에 즐길 수 있게 되어있는 이 정원의 중 심이다.

계속 들어가니 가요노이케(花葉之池)가 있고 그 뒤로는 불당과 암자가 있다는데 들어가지 않고 바로 유이신잔 쪽으로 갔다. 왼쪽에 사와노이케가 있고 그 안에 자리지마(砂利島), 나카노 시마(中之島) 등의 작은 인공섬 들이 떠있고, 오른쪽으로는 높이가 약 6m밖에 안되는 유이신잔이 나타났다. 연산홍으로 덮여있는 돌계단으로 올라가 정상에 서서 정원 전체를 내려다보고는 야쓰하시(八橋)를 건너 류텐(流店)정자로 내려왔다. 좀 더 들어가니 가코노이케(花交之池)란 작은 연못이 있고 이 연못으로 떨어지는 가코노다키(花交之瀧)라는 작은 폭포가 있었으며, 이곳을 건너니 차소도(茶相堂)이란 다실이 있었다. 여기가 제일 안쪽이라 밖으로 돌아 나오니 오른쪽으로 매화 림(梅林), 벚나무 숲(櫻林), 단품나무 숲인 치시오노모리(千入之林) 등 숲이 나타났다. 매화와 벚꽃은 다 지고 단풍나무에는 파릇파릇한 새순이 돋아나 있었다. 계속 출구 쪽으로 나가니 긴 차밭(茶畑)이 있고 두루미 사육장(鶴舍), 승마장(馬場), 궁술장(弓場)등이 이어졌다.

그 넓은 정원 어느 쪽으로 가나 모두가 사람의 손으로 만들고 정성 들여 가꾸어놓은 전형적인 일본정원의 풍치가 배어있었다. 가히 일본을 대표하는 정원이라 하겠다. 이렇게 예쁘게 가꾸어놓은 정원은 우리나라에도 많다. 예컨대 순천만 국가정원이나 남해시의 원예예술촌, 통영시의 장사도 해상공원 등도 이정원에 못지않게 아름답게 가꾸어져있다. 다만 이 고라쿠엔에는 300여년의 역사가 배어있을 따름이다.

2. 아오모리 ASPAM

아오모리시는 사과의 산지로서, 그리고 네부다 축제로써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다른 명승관광지도 많지만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현립미술관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다른 곳을 일일이 가볼 수 없어 아오모리 시내와 주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ASPAM Tower에 올라갔다.

아오모리현의 관광센터가 자리 잡고 있는 ASPAM은 15층 짜리 삼각형의 건물이다. 아오모리의 “A"자를 위하여 그렇게 설계했다는데 하여튼 건물모양이 특이했다. 면적이 넓은 1층에는 향토음식이나 토산선물을 파는 기념품점이 들어있고, 2층에는 관광센터, 영화관, 공연장등이 있었으며, 그 위층으로는 각종 회의실, 고급음식점, 다목적 공간들이 구비되어있었다. 13층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있어 주위를 파노라믹하게 내다볼 수 있었다. 시내 쪽으로는 우리가 건너온 아오야마 Bay Bridge의 위용을 내려다볼 수 있었고, 북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시모기타한토(下北半島)국정공원(國定公園)과 쯔가루한토(津輕半島)가 보였다. 남쪽으로는 도와다하치만타이(十和田八幡平)국립공원(國立公園)의 제일 북단에 있는 핫코다산(八甲田山)의 위용이 눈에 들어왔다. 이산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핫코다연봉(八甲田連峰)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최고봉은 1,585m에 달한다. 우리가 갔을 때에도 정상부위에는 흰 눈으로 덥혀있었다.

30여 년 전에 도와타코(十和田湖) 호변에서 있었던 국제학회에 특별연사로 초청되었을 때 우리내외는 이 호수와 이 산, 그리고 오이라세게이류(奧入瀨溪流)까지 자세히 둘러보았다. 그때가 마침 여름이라 아오모리시에서 네부다마쯔리(Nebuta祭)가 열린다고 하여 그리로 가서 구경할 수 있었다. 이것은 아키다(秋田)의 칸토마쯔리(竿燈祭)와 센다이(仙臺)의 다나바다마쯔리(七夕祭)와 함께 일본 동북지방의 삼대축제로 한번 볼만하다고 했다. 수많은 군중들이 제가끔 제작한 네부다를 메고 “와-랏세”를 왜치면서 시가지를 따라 춤을 추고 지나갔다. 이를 보면서 일본 군중들의 단결력과 저력을 새삼 느꼈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ASPAM에 진열된 가지가지의 네부다를 보고 옛날의 그 감동을 회상했다.

3. 산쿄쇼고(山居倉庫)

메이지(明治)시대 1893년에 건조된 쌀 보관창고로서 지금도 농산물 보관에 이용되고 있다. 주위 벽에 흙을 발라서 만든(土藏作) 창고 12개동이 나란히 붙어있는데, 지붕은 이중구조로 열을 차단시키고 벽 사이는 틈새를 메우는 방법으로 습기를 막아 온도와 습기를 조절시키고 있다. 외부에는 둘러가면서 느티나무 울타리가 심어져있어 햇볕과 바람을 막아 쌀을 최상의 상태로 보관해왔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마침 비가내리고 있어 멀리 있는 1호동에서 5호동까지는 가지 않고 6호동에서 내부구조를 들여다보고는 11호동과 12호동으로 왔다. 1호동에는 쇼나이(庄內)의 쌀 역사 자료관을 꾸며놓았다는데 가보지 못하여 아쉬웠다. 11호동은 하나야구노 야가다(華의 館)라고 이름을 붙이고 사카다(酒田)지방의 역사와 문화의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민예품이랑 각종 공예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는 옛날의 쌀가마니와 쌀 포대 등을 그대로 쌓아놓아 이색적이었다. 12호동은 시이와세노 야가다(幸의 館)라고 이름을 짓고 우리가 점심을 들었던 호고데이(芳香亭)란 음식점을 위시하여 선물가게, 편이점 등이 들어있었다.

4. 북방문화박물관(北方文化博物館)

에도(江戶)시대 중반기에 에치코(越後)의 소마(澤海)라는 마을에 농업으로 성공하여 막대한 부를 쌓은 이토가(伊藤家)가 대대로 살아오던 집을 쇼와(昭和)시대에 재단법인 북방문화박물관을 설립하여 영구보존하게 된 곳이다. 이토가는 계속 호농(豪農)의 길을 걸어 메이지(明治)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대지 8,800평, 건평 1,200평에 방이 65개가 되는 순 일본식 대저택을 지은 것이다. 여기에 이토가가 갖고 있던 미술품, 공예품, 고고자료 등을 다채롭게 전시하고 있어 2000년 4월에는 국가의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우선 정문을 들어서니 중앙에 연못이 있고 각지에서 가져온 명석(名石)을 배합하여 가마쿠라-무로마치(鎌倉-室町)시대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회유식(回遊式)정원이 나타났다. 여러 채의 다실(茶室)이 있었는데 모두 고색창연한 이끼가 끼어있었다. 한쪽 구석에 산가쿠데이(三角亭)란 작은 정자가 있었는데, 정자의 모양 뿐 아니라 기둥, 창호, 다다미 등 모든 것을 삼각형으로 만든 특이한 건물이었다.

연못에 접해있는 가장 큰 본채에는 오히로마 자시키(大廣間 座敷)라는 대응접실이 있었다. 대현관은 기둥, 천장, 현관마루에서 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게야기(欅, 느티나무)로 만들어졌고, 특히 현관 마루와 문은 모두 한 장의 판으로 이루어졌다. 도코노마(床노 間)를 끼고 일곱 개의 방이 있었는데 다다미(疊)의 수가 전부 100장이라고 했다. 남쪽 복도에 연결된 객실인 오차노마(茶노 間)에는 특이한 스기(杉, 삼나무)로 만든 환형(丸侀, 석가래를 연결하는 처마끝의 각재)이 있어 이 저택의 볼거리중의 하나라고 했다. 이 삼나무는 후쿠시마(福島)현 아이쓰(會津)지방의 미시마초(三島町) 삼림부근에서 뗏목으로 운반해온 길이 30m의 하나의 나무로 쓴 것이라 했다.

본채를 구경하고 출구로 나가는데 오른쪽으로 흰색의 벽과 기와가 인상적인 집이 있었는데 슈고간(集古館)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창고로 쓰던 건물이었는데, 이토가가 수집한 여러 나라의 골동품이 전시되어있었다. 중국의 명-청조시대(明-淸朝時代)의 도자기들과 우리나라의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항아리들이 전시되어있었는데 그 품질은 우리나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에 비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도 경주의 최부자집, 안동의 하외유씨마을 등 오래 전에 부자로 살던 댁의 집들이 보존되고는 있으나 이 이토가의 고우노노 야가다(豪農의 館)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고 느꼈다.

5. 유키구니노 야도(“雪國”노 宿) 다카한(高半)

다카한은 니이가타 지역에서는 가장 오래된 온천여관이다. 900여년 전 에치고(越後) 시바다(柴田)의 무사인 다카하시 한로쿠(高橋半六)가 간토(關東)지방으로 가던 도중 병에 걸려 이곳에 머물게 되었고, 약으로 쓰기위하여 살무사나 송장개구리를 잡으려 계곡으로 들어갔다가 우연히 저절로 솟아오르는 온천을 발견한 것이 시초가 되어 이 여관이 생겨났다. 그 동안 눈사태와 산사태가 발생하여 처음 온천 용출지점에서 200m정도 떨어진 언덕에 집을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이 온천은 옛날부터 약효가 있다고 하여 야쿠시노유(藥師노 湯), 피부를 아름답게 해준다고 하여 다마고노유(卵노 湯), 중풍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주후노유(中風노 湯) 등의 별명으로 불려왔다.

다카한여관은 온천물이 좋고 주위 경관이 뛰어나기 때문에 뿐 아니라, 그곳에 “가스미노마(霞노 間)”가 있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가스미노마는 1968년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가 1934년부터 1937년에 이르기까지 기거하면서 그 대표작 “유키구니(雪國)”를 집필한 장소이다. 소설 “유키구니”는 부모로부터 받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던 시마무라(島村)와 약혼자의 치료비를 벌기위하여 계이샤(藝者)가된 고마코(駒子)가 눈이 쌓인 온천정(溫泉町)에서 나누는 슬픈 사랑이야기를 시와 같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쓴 소설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 었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1956년 하나야나기 쇼타로(花柳章太郞)에 의하여 무용극으로 만들어지고, 1957년에는 도요타 시로(豊田四郞)의 감독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흑백영화인데도 당시에 절찬을 받았고 지금도 이 여관의 2층에 있는 자료실에서 때에 따라서 상영되는데 우리들도 그 첫 부분을 감상했다. 영화감상 홀 옆에는 가히 도서관이라 할 정도로 수백 권의 책들과 여러 가지 자료들이 벽을 메우고 있었다.

거기에서 베란다로 나가는 길에는 하얀 모래와 작은 돌멩이가 깔려 있어 마치 흰 설원(雪原)을 걷는 기분이었다. 신발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별로 크지 않은 다다미방의 한가운데에 네모반듯한 자개상이 있고, 상 양쪽으로 두 개의 앉은뱅이의자가 있었다. 의자에는 팔걸이가 붙어있었으며 방석이 깔려 있었다. 상 한쪽으로는 화로가 있고 그 위에 주전자가 놓여있었다. 이 모든 것이 옛날에 있던 그대로란다. 유리창을 넘어 밖을 내다보니 철로길 건너에 유자와 시내가 보이고, 그 넘어 멀리에는 미쿠니(三國)산맥의 연봉이 눈에 들어왔다. 계절은 여름으로 들어서는데 산봉우리에는 잔설이 덮여있었다.

벽에는 이시이 하쿠데이(石井栢亭)화백이 그 방에서 그린 스키장 사생화와 나카자와 시게루(中澤茂)의 눈 덮인 미쿠니산맥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다른 쪽 벽에는 요사노 아키고(與謝野晶子), 요사노 히로시(與謝野寬)부부가 이방을 방문했을 때 쓴 대련시구(對聯詩句)가 걸려있고, 그 옆에 기다하라 하쿠슈(北原白秋)부부의 시도 걸려있었다. 이 모두가 이 댁에서 가보로 보존하고 있는 자료들이다. 그래서 이곳을 “가스미노마” 문학자료실이라고 부르고 있다. 집을 나서면서 新潮文庫 판 소설 “雪國” 한 권을 사서 다카한여관 방문 기념으로 찍어주는 스탬프를 받아왔다. 집에 와서 몇 쪽을 읽다가 이 여행기를 쓰는 바람에 중단하고 있다.

6. 미소노 데라(味噌노 寺) 간코지(關興寺)

다키노유여관에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조반을 마치고 기차를 탈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 간코지(關興寺) 구경을 떠났다. 여관 안주인 나가마쓰(長松)씨가 직접 버스를 운전하였는데, 자기가 같이 가야 절에 대한 설명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

간코지는 “에치코노 미소지(越後노 味噌寺)”란 별명이 있고, “간코지로 미소를 맛보러가자”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미소와 관계가 있는 절이다. 간토간레이(關東管領)이던 우에스기가(上杉家)와 가미다가(上田家) 등 가문의 비호하에 건립된 고메자와(米澤)의 간코안(關興庵)이 전국시대의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의 미나미 우오누마(南魚)시의 우에노(上野)에 간코지(關興寺)로 정착된 것이 1751년의 일이었다. 그 후 1578년에 上杉謙信이 갑자기 죽자 그의 두 아들 우에쓰기 가게가쓰(景勝)와 우에쓰기 가게도라(景虎)가 후계다툼을 벌리다가 그 전화로 모든 것이 소실되었는데, 우에쓰기(上杉)씨가 기증한 대반야경(大般若經) 600권이 미소통(味噌桶)속에 묻혀있어서 화를 면했다고 한다. 미소는 고단(枯淡) 싯소(質素) 즉 소담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하는 승려들의 필수적인 음식이라 이 절간에도 많이 비축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일이 있은 뒤로는 “간코지(關興寺)노 미소(味噌)나메다가(嘗, 맛보았나?)”라는 말이 생겨나서 지금도 그 곳에서는 미소를 많이 생산하여 일반관광객들에게도 판매하고 있다. 우리 일행들도 여러 사람이 시주하는 셈치고 사갖고 왔다.

이 절은 사방에 산림이 울창하고, 연못도 많이 만들어두었다. 정원 한 쪽에 바위로 누워있는 용을 만들어두어서 “臥龍의 庭”이란 이름을 붙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절에는 대웅전이 없고, 석가모니의 상도 조그마한 불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대신 관음불상과 지장보살상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7. 도야마 야수오(外山康雄)의 노노 가간(野노 花館)

미소절 구경을 마친 우리는 岩船港 鮮魚센터에 들러 사케노 미소쓰케(연어의 味噌漬) 등 몇 가지 선물을 사고 바로 그 근처에 있는 노노 가간(野노 花館)을 방문했다. 예정에는 없는 곳이었지만 가서 보니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4월 하순에 갔었는데 봄철에 피는 꽃들을 잎 새 채로 채집하여, 채집한 식물과 함께 그 꽃을 정성스럽게 스켓취한 그림을 전시해두었다. 깊은 산중에서 꺾어 온 꽃도 있지만 바로 길가에 피어있는 꽃을 채집한 것도 많았다. 전시실에 들어가니 꽃향기가 가득했다. 꽃을 들여다 놓은 지 며칠이 되지 않은 것이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어떤 꽃은 나무를 통째로 화분에 심어 그림과 함께 전시한 것도 있었다. 족히 100점은 더되는 꽃의 이름을 다 알 재간은 없어 한자로 적혀있던 몇 가지 꽃들의 이름을 옮긴다. 猫柳, 半鐘蔓, 虫狩, 梅, 白梅, 壇香梅, 櫻, 山櫻, 牧丹櫻, 春蘭, 越노 寒菜, 雪笹, 福壽草, 片栗, 大三角草, 水芭蕉, 등 모두가 예쁘고, 귀엽고, 앙증맞고, 아름다웠다. 이러한 채집을 춘하추동으로 나누어하고, 전시물도 매번 바꾼다고 했다. 이걸 모두 머릿속에 담아둘 수 없어 도야마 야수오(外山康雄)의 최근 저서 “노노 하나, 만요노 하나(野노 花, 万葉노 花)” 한 권을 샀다. 마치 식물도감과도 같이 보기에 즐거운 책이란 부제도 달려 있었다. 일본 옛 시집 만요(万葉)에 등재된 시들을 해당하는 꽃들과 함께 올려놓은 것도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마침 도야마씨가 현장에 있어 책에 싸인을 부탁했더니 속표지에 붓으로 그림과도 같고 글씨와도 같은 싸인을 해주었는데, 그게 바로 하나의 예술품과 같았다. “꽃 속에 있어 항상 행복합니다”란 뜻이었다. 정말 재간과 재치를 겸비한 사람이었다.


V. 미술관 관람

1. 도쿄 국립서양미술관(東京 國立西洋美術館)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 Tokyo)


이곳은 도쿄도(東京都) 다이도구(臺東區)의 우에노 온시고엔(上野 恩賜公園)에 자리 잡고 있는 국립미술관으로 서양미술품 만을 전시하고 있다. 1959년에 개관한 이 미술관에는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인상파 및 후기인상파 화가들의 회화와 조각을 중심으로 하는 마쓰가다컬렉션(Matsukata Collection)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일본의 미술품수집가 마쓰가다 고지로(松方幸次郞)는 가와사키(川崎)조선소의 회장으로 제1차 세계대전 때에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자신의 자산으로 2,000점 이상의 미술품을 수집했다. 자신은 예술에 관한 식견이 부족하므로 국내외의 많은 화가, 학예사, 미술사학자, 문인들의 자문을 받아 인상파화가들의 회화(繪畵, Paintings), 소묘(素描, Drawings), 판화(板畵, Prints), 조각(彫刻, Sculptures), 공예품(工藝品, Crafts) 등을 수집한 것이 마쓰가다 컬렉션이다. 이것을 일본으로 반입하려다가 막대한 관세를 내어야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수백 점은 영국 런던의 Pantechicon창고에 보관해두었다가 그곳의 화재로 말미암아 소실되었고, 나머지는 프랑스의 Rodin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프랑스정부가 "적국자산(Enemy Property)"로 몰수해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San Fransisco평화조약에 의거하여 이 수집품들은 공식적으로 프랑스의 "국가재산(National Property)"으로 되었다.

그 후 일본과 프랑스정부간의 끈질긴 협상으로 이 수집품을 "기증반환(Donation Return)"의 형식으로 일본에 돌려주되 프랑스정부는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 모든 Collection을 한 곳에 전시하기위하여 미술관을 건립하되 그 이름을 프랑스미술박물관(Museum of French Art)이라고 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국립서양미술관: 프랑스미술의 마쓰카다 수집품(Matsukata Collection of French Art)”라고 하기로 타결되었다. 또 한 가지 조건은 이 미술관의 설계를 스위스태생의 Le Corbusier에게 맡기기로 하는 것이었는데, 실제 이 건물은 그와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설계되었다. 이렇게 되어 우에노공원에 서있는 이 미술관은 그 건물 자체가 세계에서 유명한 건축물이 되었다.

미술관 내부에 들어가기 전에 미술관 앞 정원에 설치되어 있는 August Rodin의 두 개의 걸작품, “깔레의 시민들”과 “지옥의 문”을 관람했다.

"깔레의 시민들(The Burghers of Calais)"은 깔레시의 귀족들이 보여준 Noblesse Oblige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만든 조각이다. 영불간의 백년전쟁을 승리한 영국왕 Edwards 3세가 Calais시민들을 살려주는 대가로 요구한 귀족공민 6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시에서 가장 큰 부자였던 Eustache de Saint Pierre가 선두로 시장, 법률가 등 귀족들이 자원하여 처형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이다. 이들은 당시 임신 중이던 영국왕비의 간청으로 사면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이 여섯 공민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사회지도층에 대한 도덕적인 의무, 즉 Noblesse Oblige의 전형적인 모범으로 칭송되고 있다. 이 사건이 있은 지 500여년이 지난 후에 Calais시로부터 이 여섯 사람을 형상화해달라는 주문을 받은 Rodin이 10년 아상의 세월에 걸쳐 작품을 완성한 것이 이 조각이다.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이 Calais시의 함락에 대한 비장한 슬픔 속에 죽음에 대한 공포에 떨면서도 자기를 희생시키겠다는 진짜 인간적인 모습이 나타나 있다.

조각의 진품원본(Original Edition)은 원형 거푸집(Mould)에 청동을 부어 만드는데 프랑스법에는 한 작품에 대하여 12개까지의 진본만 만들고 그이상은 만들지 못하게 되어있다. 이조각의 최초의 진품원본(1895년)은 Calais시청 앞에 전시되어있고, 그중의

하나(1959년)가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에 있다. 12개가운데 마지막 진품원본(1995년)이 서울의 Rodin Gallery(삼성문화재단에서 Plateau로 개칭했다가 구 삼성생명본관이 매각되면서 폐쇄됨)에 전시되어있었다.

"지옥의 문(The Gate of Hell)"은 1880년 프랑스정부가 새로 건축할 장식미술관의 정문조각으로 주문한 것이지만 이 계획은 중도에 취소되어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러던 중에 Rodin은 Dante의 신곡 중 지옥 편을 읽고 영감을 얻어 지옥으로 향하는 인간의 고통과 지옥문을 타고 흐르는 뼈만 앙상한 영혼들의 절규를 담은 180여개의 작은 조각상을 만들어 부쳤다. 그 가운데 상부중앙에 이것을 지켜보면서 고뇌하는 인간의 전형인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은 세계적인 걸작이다. 이 작품은 ”지옥의 문“에서 독립적으로 구분되어 나와 Rodin에 의하여 실물보다 좀 더 크게 제작되어, 벗은 채로 엉덩이를 바위에 걸치고 여러 인간들의 고뇌를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에 잠겨있는 남자의 상으로 남아있다. 그밖에도 문 위에 서있는 ”세 그림자 망령(Three Shades)", "아담(Adam)", "이브(Eve)", "유고리노(Ugolino)"등 조각은 독립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지옥의 문“도 7개의 진품원본이 제작되어있는데 이곳에 있는 것이 여섯 번째의 것이고 나머지 일곱 번째의 것은 삼성문화재단에서 구입하여 Rodin Gallery에 전시했었다.

미술관 내부에는 Matsukata Collection이외에도 미술관을 확장하면서 일본정부가 매입하기도하고 기증받기도하여 모은 미술품이 2,000여점 되지만 모두 한 거번에 전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르네상스시대부터 낭만주의, 인상파, 후기인상파의 그림만 해도 수백 점에 이르고 있다. 이들 전시품들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Matsukata씨가 Claude Monet에게서 직접 구입했다는 18점의 유화였다. 그 가운데 몇 점만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수련(睡蓮, Water Lilies)", "Popular in the Sun", "On the Boat" 등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밖에도 Edouard Manet의 "Boy in Flowers", Camille Pissarro의 "The Harvest", Pierre Auguste Renoir의 "Woman with a Hat", Gustave Courbet의 "Waves", Paul Cezanne의 "The Bare Tree at Jas de Bouffan", Vincent van Gogh의 "Roses" 등의 유명한 그림들이 많았다. Yamamura가족들이 기증한 Joan Miro의 "Painting", Ryuzaburo Umehara씨가 기증한 Pablo Picasso의 "Couple" 등 기증품들도 많았다.

이 전시장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여러 걸음을 앞서 나가고 있는 일본의 저력을 확인하고는 한없는 부러움을 안고 자리를 떴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미술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기부문화가 부러운 것이다.

2. 아오모리 현립미술관 (靑森縣立美術館)
(Aomori Museum of Art)


아오모리현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세계적인 화가 Marc Chagall의 "Aleko 무용극 배경 화"를 사들이고, 동시에 향토예술인들의 작품을 전시하여 세계적인 명소로 발전시키려는 계획하에 지은 미술관이다. 건물의 설계는 아오키 쥰(靑木淳)이 맡았는데 그는 그 부근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나이마루야마(三內丸山)유적발굴현장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고 한다. 지면을 발굴 현장처럼 땅속 깊이 파내고, 그 위에 순백의 벽돌로 만든 구조물을 불규칙하게 덮어씌움으로써 기복이 있는 지면과 천장높이가 다른 구조물이 엇갈리듯 맞물리면서 생겨난 공간을 전시실과 수장고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Aleko Hall이 전개되는데, 4층 높이까지 천정이 탁 트인 거대한 공간이었다. 바닥면이 가로 세로 각 21m이고 천정높이가 19m이라고 했다. 네 개의 벽면에 Marc Chagall의 "Aleko무용극 무대 배경 화(Backdrops)"가 한 개씩 걸려있었다. 이 무용극은 러시아의 대문호 Alexander Sergovich Pushkin의 서정시 "The Gypsie"에서 따온 이야기를, 역시 러시아의 대자곡가 Peter Ilich Tschaikovsky의 Piano Trio에 맞추어 만든 Ballet인데, 러시아태생 유대인 천재화가 Marc Chagall이 배경 화를 그려 세상의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Chagall이 Nazi의 박해를 피해 미국에 피신해있는 동안에 그린 것인데 당시 절찬을 받은 바 있다.

"Ballet Aleko"의 줄거리를 본다. 문명사회에 염증을 느낀 러시아의 젊은 귀족 Aleko가 어느 날 자유를 찾아 집시무리에 합류하여 길을 떠나고, 그곳에서 집시족장의 딸인 Zemphira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변덕스러운 Zemphira의 마음은 다른 젊은 집시사내에게로 떠나고, 이를 알게된 Aleko는 질투에 눈이 멀어 Zemphira와 그녀의 새 애인을 살해하고, 그는 집시무리로부터 추방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전곡이 4막으로 되어있는데, 그 장면은 다음과 같다.

제 1 막: 달빛 아래 아레코와 젬피라
(Aleko and Zemphira by Moonlight)

제 2 막: 카니발
(Carnival)

제 3 막: 어느 여름날 오후의 밀밭
(A Wheatfield on a Summer's Afternoon)

제 4 막: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의 환상
(A Fantasy of St. Petersburg)

이가운데 제1막, 제2막, 제4막의 배경 화는 아오모리현립미술관의 소장품이나, 제3막의 배경 화는 미국 Philadelphia Museum of Art(Gift of Leslie and Stanly Westreich, 1981)에 소장된 작품인데 현재는 Philadelphia Museum of Art로부터 2020년까지 장기간 대여 받아 네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Marc Chagall의 여느 다른 그림에서와 같이 Aleko무용극 배 경화에서도 화려한 색채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1막에서는 짙은 청색의 바탕에 조그마한 닭의 붉은 색, 2막에서는 황색과 주황색의 바탕에 꽃다발의 초록색, 3막에서는 짙은 노란색의 바탕에 태양의 강열한 붉은색, 그리고 4막에서는 짙은 어두움의 검정색의 바탕위에 무덤을 상징하는 흑갈색이 잘 어울리고 있다.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물체들이 무중력상태로 떠다니고 있고, 모든 그림에서 특징적인 동물이 등장한다. 1막에서는 붉은 닭이, 2막에서는 바이올린을 가진 갈색 곰과 꽃바구니에서 떨어지는 검정 원숭이가, 3막에서는 푸른 보트를 젓고 있는 사람이, 그리고 4막에서는 황금빛 샨델리어로 치닫는 흰 말이 눈에 들어온다. 제4막의 배경은 발레곡의 장소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난데없이 St. Petersburg시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이 발레무용극의 원작자 Pushkin이 여자문제로 결투를 당해 목숨을 잃은 곳이 이 도시였기 때문에 Aleko도 그런 결전장으로 가는 환상을 가졌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Chagall은 이 넉 장의 배경 화 뿐 아니라 이 발레극에 나오는 60여명의 인물들의 의상도 디자인했다.

Aleko Hall을 지나면 무나카타 시코(棟方志功)전시실이 나온다. 무나카타는 아오모리가 자랑하는 판화가로서, 아오모리현청의 준공을 기념하여 그가 제작한 대작 “하나야노 사쿠(花矢노 柵, 꽃 화살의 울짱)”가 전시되어있었다. 이작품은 말을 타고 꽃 화살(花矢)을 쏘아 신에게 곰을 바치는 의식을 치르던 아이누족의 축제인 구마오쿠리(熊送)에 착안하여 그린 명작이다.

미술관 서쪽 옥외 공간에 설치되어있는 “아오모리 켄(靑森犬)”도 중요한 볼거리였다. 높이가 8.5m, 가로 폭이 6.7m이나 되는 거대한 개의 형상은 아오모리현 히로사키(弘前)시 출신인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의 작품이다. 이 도발적인 눈매를 갖고 애수에 잠긴 개 형상의 입체작품은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으며, 이 미술관을 상징하는 작품의 역할을 하고 있다.

건물 입구 외벽에 설치된 Symbol Mark는 나무들과 알파벹의 A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것으로 길이가 같은 수평선, 수직선, 대각선으로 이루고 있다. “푸른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다”는 뜻을 담아 푸른 숲 즉 아오모리(靑森)를 상징한다고 한다. 우리는 보지 못했지만 눈이 쌓인 밤에 네온사인이 켜지면 흙색의 바탕에 푸른색의 글씨와 흰색의 눈이 쌓여 보기에 좋다고 한다. 이 고장 출신의 Graphic Designer 기쿠치 아쓰키(菊地敦己)가 고안한 것이다.

이렇게 미술관의 개성 있는 건축, 장식, 조각, 그림 등에 더하여 Marc Chagall의 대작에 힘입어 국내외에서 연간 백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온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도 이렇게 보람 있고 뜻있는 일에 돈을 써주면 얼마나 좋을 가?

3. 아키다현립미술관(秋田縣立美術館)
(Akita Museum of Art)


아키다현은 2013년 아키다시의 중심인 센슈고엔(千秋公園) 건너편에 있던 옛 미술관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새 미술관을 지었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가 설계를 맡았는데, 옛 건물의 삼각형지붕에 착안하여 삼각형을 모티브로 디자인하였다. 그는 “물과 빛, 그리고 노출콩크리트의 건축가”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로 조형미와 자연을 조화시킨 조경, 명과 암을 극명하게 나누는 빛의 활용 등으로 유명한 건축가이다. 이 미술관을 위하여도 노출콩크리트를 사용하여 소박하나 예쁜 건물을 지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1층에는 큼직한 "현민Gallery"가 설치되어 현민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다. 현민 들이 전시회를 열고 예술을 통하여 현민 들 간의 문화교류를 활성화시키는 행사를 개최할 수 있도록 했다. 라선 계단을 걸어 2층에 올라가 면 입장권판매소와 전시장출입문이 있는데 그 앞에는 널찍한 Museum Lounge가 자리 잡고 있다. 라운지에 비치된 안락한 벤치에 앉으면 밖으로 물 정원(水庭)이 있고, 그 건너 큰 길 넘으로 센슈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진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후지타 쓰구하루(藤田嗣治) 대벽화 Gallery"가 나타난다. 후지타 쓰구하루(1886 - 1968)는 도쿄에서 출생하여 화가에 뜻을 두어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하고 26세에 프랑스에 유학하였다. 파리의 Montparnasse에서 Picasso나

Modigliani와 같은 이방인화가 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일본화의 기법을 유채화에 접목시켜 "유백색의 살결(乳白色의 肌)"이라는 나부 상을 그려 서양화단에서 절찬을 받은 바 있다. 1933년에 일시 귀국하여 활동하였으나 전후에 좌파화단으로부터 전쟁협력자라는 비판을 받아 갈등을 일으키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그림만을 그려주세요. 동료들을 헐뜯는 싸움은 그만하세요. 일본화단이 빨리 세계수준에 이르도록 해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프랑스로 가버렸다. 프랑스국적을 취득하고 카톨릭교에 귀의하여 Leonard란 세례명도 받았다.

그가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1937년에 당시 아키다의 부호 히라노 마사기치(平野政吉)의 의뢰로 이 대벽화를 그렸다. "아키다의 행사(秋田의 行事)"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가로 20.5m, 세로 3.65m의 대형벽화이다. 그림의 가운데에 세로로 걸쳐있는 고우로기바시(香爐木橋)를 기점으로 하여 오른쪽에는 주로 도마치(外町)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축제와 행사가 그려져 있다. 간토마쓰리(竿燈祭), 산오마쓰리(山王祭), 반덴호노(梵天奉納)등이 그려져 있고 그 배경에는 영봉(靈峰) 태평산(太平山)이 보인다. 다리 왼쪽으로는 아키다 서민들의 겨우살이가 해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두툼한 가죽털옷을 입고 일하는 하인들로부터 눈 놀이(雪遊)를 하는 곱슬머리(髷)의 소녀, 썰매(橇)를 끄는 말, 강아지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 좌상 단에는 나라(奈良)시대의 건물이 그려져 있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의 흐름을 암시하고 있다. 후지타의 "秋田의 行事" 외에도 여러 점의 그림이 히라노 마사기치 미술재단에 소장되어있지만 이들은 모두 아키다 현립미술관에서 영구 전시하도록 되어있다.

우리가 방문하였을 때 "3층 Gallery"에서는 “밤과 미술”이라는 특별 기획전이 "어둠이 흐른다. 달이 춤춘다."는 부제를 달고 열리고 있었다. 히라노 미술재단의 소장품과 개인 수집가들이 출품한 예술품등으로 밤의 풍경, 밤의 축제와 사람들의 삶, 밤하늘을 묘사한 그림, 겨울밤을 찍은 사진, 달을 주제로 한 조각 등을 볼 수 있었다.

4. 도몬 켄 기념관(土門拳 記念館)
(Ken Domon Museum of Photography)


야마가다겐(山形縣) 사카다시(酒田市)에 있는 도몬 겐 기념관은 일본 최고의 사진작가 도몬 켄(土門拳)이 일생동안 찍은 7만 여점의 사진작품을 고향인 사카다에 기증한 후, 이를 수장하고 전시하기위하여 지은 세계 최초이자 최대인 사진전문 박물관이다. 사카다시가 1983년 이이모리야마공원(飯森山公園)에 아름다운 자연숲과 언덕을 배경으로, 전면에 연못을 배치하고 멀리는 죠가이산(鳥海山)이 보이는 곳에 건물을 세웠다. 이 기념관의 설계는 다니구치 요시오(谷口吉生)가 하였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건물이 잘 조화를 이루게 하여, 그 조화된 느낌 속에 도몬 켄의 예술 공간을 더욱 순도 높게 숙성시키는 것을 주제로 삼아 설계하여 여러 가지의 건축 상을 받은바 있다. 이 기념관에는 유명한 예술가들이 우정의 징표로서 기증한 예술품들이 많아 더욱 가치를 높여준다. 이들을 나열해본다.

(1). 명판(銘板): 가메쿠라 유사쿠(龜倉雄策)
기념관입구 정면에 붙어있는 “도몬켄기념관”이란 명판
(2). 조각(彫刻): 이사무 노구치(勇 野口)
연못과 건물사이에 서있는 “도몬상(土門상)”이란 조각
(3). 정원(庭園): 데시가와라 히로시(勅使河原廣)
건물의 창문앞으로 만들어진 “흐름(流레)”이란 이름의 연못과 정원
(4). 명석(銘石): 구사노 신페이(草野心平)
정원입구 잔디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자리에 누워있는
“겐코(拳湖)”란 명석

우리가 이 기념관을 방문한 날은 부슬비가 내렸지만 우산을 바치고 다니면서 연못과 정원, 그리고 거기에 전시된 미술품들도 관찰했다. 구름이 끼어 멀리 있는 산은 볼 수 없었지만 정원의 아름다움은 만끽할 수 있었다.

도몬 켄(1909 - 1990)은 사카다시에서 태어났으나 7세 때 고향을 떠나 요코하마 현립제2중학교에서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화가가 되고 싶어서 도쿄 우에노의 한 사진관에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1935년 보도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일본공방(日本工房)"에 입사한 후 1979년 뇌혈전증으로 쓰러지기까지 45년간을 보도사진작가로서 격동의 쇼와(昭和)시대를 기록하였다. 전쟁 중에 선전보도에 가담하였으나 이를 반성하고 전후에는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Realism사진운동을 주도하여 아마츄어 사진작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일본과 일본인이 좋다”고 선언하면서, 자기의 관심을 끄는 대상을 응시하고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사진을 촬영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기념관에는 도몬 켄의 전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면서 순차적으로 공개 전시하고 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쇼와시대의 기록사진들, 가와바다 야수나리(川端康成) 등 유명인사 들의 풍모(風貌), 치쿠호(筑豊)의 아이들, 기오미주데라(淸水寺) 등 유명사찰의 고찰순례(古刹巡禮), 풍경사진 등 다수의 걸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VI. 여행을 마치고

이번 6박 7일의 여행은 우리가 지불한 경비나 우리가 소비한 시간에 비하여 조금도 아쉬움이 없는 재미있고 유익한 여행이었다. 우선 훌륭한 여러 분들을 새롭게 사귀어 즐거운 한 주간을 보낼 수 있었으며, 풍성한 먹거리, 편안한 잠자리, 넘치는 볼거리는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 가운데서도 도가이도시칸센(東海道新幹線)의 유쾌한 기차여행, 도쿄제국호텔(東京帝國호텔)과 유자와온천(湯澤溫泉) 나고미노 야도(和노 宿) 다키노 유여관(瀧노 湯旅館)의 편안한 잠자리는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리고 화라쿠노 마(和樂노 間)에서의 조죽정식(朝粥定食), 호고데이(芳香亭)에서의 회석주정식(懷石晝定食)과 나미노 우다(波노 詩)에서의 회석만찬(會席晩餐)은 아오모리의 덴슈(田酒)와 니이가다의 고시노 간바이(越노 寒梅) 등을 곁들여 일본의 식도락문화를 소개해주었다. 유적지에서는 가스미노 마(霞노 間) 문학자료관이 그리고 미술품에서는 Marc Chagall의 Aleko 무용극 배경화가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이번 여행을 주선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주신 신용직(愼鏞直), 배성자(裵成子) 내외분께 감사드린다.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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