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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 일주와 에게해 크루즈여행
글번호  76, (조회 : 523)
글쓴이  최규완 날 짜  2018/04/06 (11:53)
I. 기억을 더듬어

나는 지금 만 4년 전에 갔던 Turkey와 Aege해의 여행을 회상하면서 기행문을 쓰고 있다. 대체로 기행문은 여행 중에 틈틈이 짬을 내어 그 때 그 때 보고 들었던 일들과 느꼈던 감상을 메모하거나, 아니면 여행 직후에 그 여행의 감동이 채 가시기 전에 그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때 모아놓았던 기록물들을 보면서 그 때의 일을 회상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이유는 꼭 한 가지. 내가 지금 여든을 넘기며 옛날의 여행을 더듬어보니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이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학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믿음의 선배들이 남긴 성지를 순례하기 위하여, 세계의 풍광을 둘러보기 위하여, 문명유적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그리고 골프를 즐기면서 휴식을 갖기 위하여 등 여러 가지 명목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아주 인상적인 여행은 몇 가지 밖에 되지 않는데 그 가운데서도 이 여행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그 때의 기억을 그 감동을 글에 담아 남겨두려고 한다.

이 여행은 정영의(鄭永儀) 아시아나항공 상임고문의 제안으로 상미회(尙美會) 회원들과 함께한 여행이었다. 상미회란 신용석(愼鏞碩)대표를 위시한 각계각층의 여행 동호회원들이 조직한 비영리 관광여행 알선 단체이다. 세계 각국의 가장 좋은 관광지를, 가장 좋은 숙소와 식당을 연계하여 회원들에게 안내하고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비용은 다소 비 싸지만 가장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여행을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단체이다.

이 상미회의 이사이기도 한 정영의고문은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유능한 관료이었다. 나와는 같은 55학번으로 서울대에 입학하여, 문리대 정외과를 다녔지만 출신 고등학교와 전공학과가 달랐기 때문에 서로 일면식도 없이 지냈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공동의 친구인 유종하(柳宗夏) 전 외무부 장관의 소개로 알게 되어 지금까지 30여년을 호형호제하며 지나는 사이이다. 나는 그와 그 가족들의 건강을 돌보아주고 그는 내가 겪는 사회적 대소사를 도와주면서, 내외간에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 마침 그들의 결혼 50주년을 기념하여 여행을 간다기에 우리도 함께 가기로 하였다.

이 여행에는 남녀 합계 25명이 참가하였는데 출발 며칠 전에 참가자들이 함께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는 정장관 내외를 빼고는 아무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막상 여행을 시작하고 보니 아는 분들이 나타났다. 고등학교 후배라고 자신을 소개한 분, 나에게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인사한 분, 또 친구의 친구라고 이야기하는 분, 그리고 경남 창원시에서 성형외과를 개원하고 있다고 한 분들이 나타나서 금방 모두 친하게 되었다. 참가자들의 연령분포를 보면, 제일 젊은이가 1957년생이고 정 장관과 내가 1937년생이니, 20여년의 연령차가 나는 25명이 함께 여행한 것이었다. 정 장관은 나와 같은 나이었지만 생일이 나보다 두어 달 뒤었기 때문에 내가 맏형이 되어버려서 언제나 제1호 노인네의 대접을 받으면서 다녔다.

이 여행에는 상미회의 이상엽(李相燁)이사가 동행하여, 현지가이드인 자스민양과 더불어 안내도 맡고, 관광지 해설도 해주었다. 이 이사는 이 관광여행을 위하여 현지를 미리 답사하면서 볼거리, 먹거리, 그리고 잠자리를 직접 챙기고 예약을 해두었기에, 어느 여행사의 가이드보다 안내 역할을 훨씬 더 잘해내었다. 우리 일행 25명은 나이에 큰 차이가 있고, 하는 일도 각기 달랐지만 이 이사의 지휘 하에 한 가족 같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나갔다. 보통 단체관광여행에서 볼 수 있는 지각생이나 낙오자가 전혀 없이 모두가 재미있는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II. 터키 일주 육로여행

우리 일행은 2014년 4월 24일 아시아나항공 OZ 551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여행길에 올랐다. 이 비행기에는 우리 내외와 정 장관 내외만 탑승하고 다른 분들은 모두 대한항공편으로 떠났다. 첫 번째 도착지는 Istanbul의 Ataturk국제공항이었는데 먼저 도착한 우리는 두어 시간을 기다렸다가 다른 일행들과 합류하였다. 첫날의 숙소는 Sheraton Istanbul Atakoy Hotel로서 아주 좋고 편리한 곳이었다.


(1) Istanbul관광 (제1차)

Istanbul은 1,200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터키의 수도는 아니고 다만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이다. 과거에 Byzantine제국과 Ottoman Turkey제국의 수도를 지냈기 때문에 문화유적들이 산재해있고, 도시가 Bosphorus해협을 끼고 동서로 나누어져있기 때문에 아름답기가 한이 없는 곳이다. 해협의 동쪽은 아시아, 서쪽은 유럽에 편입되어있고, 서쪽 즉 구 도시에 대부분의 유적이 몰려 있었다.

Istanbul관광의 계획은 도착 다음날에 Dolmabahce궁정, Hippodrom, Yerebatan Cistern(지하 물 저장고), Grand Bazar를 구경하고, Aege해 크루즈를 끝내고 다시 돌아와서 여행 마지막 날에 Hagia Sophia성당, Blue Mosque, Topkapi궁정, 고고학박물관을 관람하게 되어있었다.


1. Dolmabahce궁전

이 궁전은 Ottoman제국의 두 번째 왕궁으로 Besik tas지역의 Bosphorus해변에 있다. 처음 지은 건물은 대화재로 불타버리고 지금의 것은 1843년 31대 Sultan인 Abdulmecit에 의하여 다시 지어진 것이다. 이 건물은 프랑스의 Versaille궁을 본받아서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지은 것이다. 그 규모가 크고 내부의 화려함은 이를 데가 없었다. 각 국에서 들여온 값비싼 보물들과 도자기들로 장식된 방들은 당시의 호하로운 생활을 엿볼 수 있게했다. 특히 터키에서는 가장 값비산 실크양탄자인 Hereke Carpet와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4.5톤 무게의 Crys tal Chandelier등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이 궁전을 짓는데 왕실의 재산을 탕진하여 제국의 멸망을 재촉했다는 점이 마치 Versaille궁의 호사를 누리다가 프랑스대혁명을 맞게 된 프랑스왕실을 생각나게 했다. Turkey공화국을 수립하고 첫 번째 대통령이 된 Ataturk도 이곳에서 집무했는데, 그가 집무실에서 순직한 것이 1938년 11월 10일 오전 9시 5분가 궁전 정원에 서있는 시계탑의 시계가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2. Hippodrom

로마시대의 대전차경기장이던 Hippodrom은 길이 500m에 이르는 너른 광장인데 지금은 말의 광장이란 뜻으로 불리며 축제일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린다고 했다. 도보로 이 광장을 둘러보았는데 지금은 큰 기둥 3개만이 남아있었다. 하나는 Egypt에서 가져온 Obelisk, 다른 하나는 Greece의 Delphi에서 가져온 Serpentine Column(뱀기둥)이고, 또 다른 하나는 Constantine VII세가 세운 Constantine Column이었다. 광장 남쪽 끝에 둥근 분수가 보였는데 이것은 19세기말에 독일의 황제이던 Wilhelm이 선물로 보낸 대리석으로 만든 분수였다.


3. Yerebatan Cistern (지하 물 저장고)

옛날 Istanbul시내에는 물이 부족했던 관계로 곳곳에 지하 물 저장고(Sarayi, Cistern)를 만들어서 필요시에 물을 공급했다. 그 가운데 가장 크고 유명한 Yerebatan Sarayi에 들렀는데 지금은 바닥에 물이 고여 있을 정도였다. 돌기둥이 많고 Medusa의 머리가 거꾸로 서서 바치고 있는 기둥과 옆으로 누워 바치고 있는 기둥이 이색적이었다. 이 밖에도 30여개의 지하 저수지가 산재해 있다는데, 지금은 모두 박물관이나 그 밖의 용도로 쓰이고 있다고 했다.


4. The Grand Bazar

Bazar란 재래시장을 뜻하는데 이곳의 The Grand Bazar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재래시장이라고 했다. Byzantine시대부터 무역의 중심지였던 이곳에 두 개의 큰 아케이드건물에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Ottoman시대를 거치면서 지진과 화재 등으로 소실, 파괴, 복구를 거듭하다가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거대한 아케이드로 되어 있는 건물에 출입구 만 해도 18개가 되고, 약 4,000개의 크고 작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딱히 무얼 살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념품, 장신구, 의복, 생활용품, 먹거리 등 별별 상품이 갖추어 있어 한번 들어가서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특히 한 쪽 구석에 몰려있는 고서적가계에는 수 만권의 책들이 진열되어있어 한번 훑어보는데도 꾀 시간이 걸렸다.


(2) Cappadocia

여행 제3일에 우리는 아침 일직 일어나서 국내항공편으로 Kayseri로 갔다. 거기에서부터는 버스를 타고 터키를 서남방향으로 종단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버스는 40인승의 벤쯔 관광버스로 장거리여행에 알맞았고, 노인대접을 받아 맨 앞좌석을 차지하여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Kayseri는 옛날 Cappadocia왕국의 수도였던 도시로, 지금도 터키 중부지방의 교통과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Cappadocia란 터키 중부내륙의 넓은 지역을 일컫는데, 그 뜻은 “말이 서식하는 아름다운 땅”이라고 했다. Kayseri에서 Nevsehir쪽으로 약 한 시간 쯤 달려가니 Goereme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나오더니 얼마 못 가서 넓은 계곡지대에 버섯모양의 기암괴석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Goereme마을을 중심으로 Nevsehir, Urgyp, Avanos 등에 이르는 계곡지대는 특이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어는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곳은 수백만년 전에 활화산이던 Erciyes산(3,917m), Hasandag산(3,300m) 등에서 분출된 용암에 Tuff(응회암, 凝灰岩), Tufa(석회화, 石灰華), Basalt(현무암, 玄武岩) 등이 덥혀 평평한 고원을 이루다가, 오랜 세월을 걸쳐 부드러운 응회암은 풍화, 침식작용을 일으키고 굳은 부분만 남아있어 버섯모양 혹은 고깔모양의 암석을 만든 곳이다. 이런 모양을 영어로는 Fairy Chimney(요정의 굴뚝)이라 부른다.

이러한 지질적인 조건으로 바위를 깎아 내어 거주공간을 만들고 피난처도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초기 로마시대에 박해받던 기독교인들이 동굴교회를 만들어 숨어 지냈는데, Byzantine시대를 지나면서 수백 개의 교회들이 세워져서 오늘날까지도 600여개는 보존되고 있다.

우리가 점심을 먹은 Manzara라는 식당은 언덕위에 있어서 Goerme Panorama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이곳의 대체적인 지식을 갖고 오후 관광에 임할 수 있었다. 그 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Goerme Open Air Museum(야외 박물관)과 그 곳에 있는 교회들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크고 오래된 벽화가 잘 보존된 Tokali교회와 성서들의 이야기를 그린 Fresco벽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Karanlik교회가 인상 깊었다. 이 곳에서 약 1km를 더 들어가면 이른바 Monk's Valley가 나오는데 그 곳에는 성 Simeon이란 수도사가 기거했다던 은신처가 있었다. 그 바위의 정상에는 세 개의 버섯모양의 꼭지가 원추형의 바위위에서 자란 듯이 서있었어 특이한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굴뚝과 같이 생긴 입구로 기어 올라가 보니 1층에는 Chaple이 있고, 3층에 은둔자가 기거하던 생활공간이 보존되어 있었다. Uchisar(비둘기 골짜기)는 뾰쪽한 바위라는 뜻으로 한 개의 큰 바위로 된 성채(城砦)인데 이곳에서도 Goerme Panorama가 잘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위 표면에 수많은 구멍이 뚤려 있어 비둘기들이 집을 지어 살고 있는데, 이곳은 버스를 타고 가면서 관람했다.

Cappadocia의 절경과 동굴교회 등의 관광을 마친 우리는 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Urgup마을로 이동하여 Kayakapi Premium Caves라는 곳에 묵었다. 이 곳은 산 속에 동굴을 파서 만든 고급 호텔로서 잠자리도 편하고, 음식도 좋으며, 경관도 좋아 운치가 있었다. 그 호텔에서 투숙기념으로 준 응회암으로 만든 찻잔 바침은 지금도 집에 잘 보관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에는 북쪽 하늘에 떠 있는 열기구들을 멀리서 쳐다보면서 Konya로 향하였다.


(3) Konya

Cappadocia를 출발하여 Pamukkale로 가는 도중에 Konya를 경유했다. 이곳은 옛날에 Iconion이라고 불리웠던 곳인데 11세기 Selcuk Turkey의 수도였다. 지금도 80여만 명의 인구가 사는 도시로 카펫과 가죽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사도 바울이 세 번의 전도여행을 할 때마다 한 번씩 방문한 도시로 유명하다. (사도행전 14;1)

이 곳에는 이스람교의 한 종파인 Mevlana교단이 세운 사원이 있던 곳에 지금은 Mevlana박물관이 서있어서, 잠간 구경할 수 있었다. Islam교회에서 가장 신비주의적인 교파인 Mevlana교단벽 창시자인 Mevlan Celale- ddin Ruminin의 Mausoleum(영묘, 靈廟)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 영묘는 녹색타일로 뒤덮인 원추형의 지붕과 기둥들로서 구성되어 매우 특이했다.


(4) Pamukkale와 Hierapolis

Konya를 떠나 서남쪽으로 제일 길고 지루한 버스여행을 5시간쯤 계속한 뒤에 Pamukkale에 도착했다. 오후 늦게 해가 질 무렵에 도착했는데,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저 멀리에 흰색으로 덮여있는 벽 같은 것이 나타나 마치 눈이 내린 것 같이 보였다. Pamukkale란 말은 Cotton Fortress(목화솜으로 이루어진 성채)라는 뜻이란다. 이것은 지면에서 뿜어 나온 석회성분을 함유한 온천수가 말라붙어서 온 세상이 석회 칠을 한 것같이 보이는 것이란다. 탄산화칼슘이 녹아있는 섭씨 35도의 뜨거운 온천수가 100m 높이에서 산 표면으로 흘러내려 여러 층의 풀을 만들고 크림색의 Stalacite(종유석, 鐘乳石)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Denizli에서 이곳으로 진입해서오니 마치 폭포가 얼어붙어 있는 것과 같은 장관이 펼쳐진 것이다.

이곳의 숙소는 PAM Thermal Hotel이었는데 역시 5성급 고급호텔이다. 석회수 온천물로 된 실내외 수영장이 구비되어있고, 전망도 아주 좋았다. 이곳의 풀장은 각종 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그리고 심신의 피로를 달래기 위하여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다.

아침 식후에는 그곳에서 약 5분 거리에 인접해있는 Hierapolis를 관람했다. 이곳은 기원전 130년 경에 Pergamon왕국의 Eumenes II세에 의하여 세워진 도시이다. Pergamon왕조의 시조인 Telesphorus의 부인인 Hiera의 이름을 따서 Hierapolis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참 전성기에는 1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살던 도시로서 신약성서(골로세서 4:13)에서도 인접도시인 Laodicea와 함께 언급된 도시이다. 이곳에는 옛날의 교회, 원형극장, 목욕탕, 공동묘지(Necropolis), 노천 온천탕 등이 유물로 남아 있었고, 지금도 족욕(足浴)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집사람을 포함한 우리 일행들도 모두 노천온천으로 내려가서 족욕을 하는 동안 나는 그곳의 한 선물가게에서 귀한 책 두 권을 샀다. "Journeys of Paul"(바울의 여행)과 "The Seven Church"(일곱 교회)란 책들인데 별로 비싸지도 않으면서 사진들과 글들이 좋아서 지금도 틈틈이 읽어 많은 참고가 되고 있다.


(5) Ephesus와 Kusadasi

Hierapolis관광을 마친 뒤 다시 서쪽으로 3시간을 달려 Selcuk이란 조그마한 도시에 도착했는데 바로 그곳에 고대에 번창했던 Ephesus와 그 유적들이 남아있었다.

Ephesus는 기원전 1,500 - 1,000년 사이에 처음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Athene의 왕 Kodros의 아들 Androklos가 그리스의 이주민들을 데리고 터키 남부인 Anatolia에 정착하여, 그들의 새 도시를 어디에 세우는 것이 좋을지를 현자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현자들이 예언하기를 물고기 한 마리와 멧돼지 한 마리가 그들을 새 도시로 이끌 것이라고 했다. 어느 날 Androklos가 야외에서 생선을 굽다가 그중 한 마리가 불판에서 미끄러져 가까이에 있던 숲속으로 떨어졌고, 이와 함께 튕기어나간 불똥이 숲에 번지자 사나운 멧돼지 한 마리가 불을 피해 뛰쳐나왔다. 현자들의 말을 기억한 Androklos는 도망치는 멧돼지를 죽이고 바로 그 자리에 새 도시를 세운 것이 고대 Ephesus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항구를 끼고 있는 이 도시는 그 후에 우여곡절을 거쳐 해상무역과 상업이 크게 발달하고, 마침내 로마 시대에는 소아시아 지역의 로마의 수도로 큰 영화를 누렸다. 고대도시 Ephesus는 거의가 로마 시대에 지어졌는데 번번이 일어났던 대지진과 홍수로 말미암아 모두 파괴되고 지금은 폐허만 남아있다. 초기 기독교회의 전통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이곳에 모셔 와서 산위에 집을 지어드려 여생을 보내도록 했으며, 자신은 Ephesus시내에 살았는데 사후에 그의 묘위에 교회당을 세웠다고 한다. 신약성서에 의하면 사도 바울이 3년 반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교회를 세웠는데(사도행전 19:1-10),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아시아의 일곱 개 교회 가운데 하나인 에베소교회이다 (요한계시록 2:1-7).

Celcuk로부터 고대 Ephesus시내로 진입하면 처음 눈에 띄는 것이 오른쪽(북쪽)으로 공중목욕탕이 나오고, 좀 더 가면 왼쪽(남쪽)으로 시가 경영하는 시장이 나타난다. 공중목욕탕(The Bath of Varius)은 무료로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되었다지만 대체로 시간이 많은 귀족들이 오락을 즐기면서 정치와 철학을 토론하던 곳이었다. 지금 흔적으로 남아있는 시설로는 탈의실(Apodyterium), 사우나실(Sudotorium), 냉탕(Frigidigarium), 열탕(Caldarium) 온탕(Tepidarium), 수영장(Natatorium) 등이 있다. 시영 시장(The State Agora)은 시장의 기능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만나고 토론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곳에는 시청(Prytaneion), 시장교회(Market Basilica) 등도 있었고, 길 건너편에는 주악당(Odeion)이 있었다.

이곳에서 도심, 즉 서쪽으로 들어가면 Domitian Street로 연결되어 Domitian Square가 나오는데 여기에 Domitian Temple, Pollio Fountain, Bassus Fountain과 같은 아름다운 분수의 유적들이 있다. 그 Square입구에 The Gate of Herakles가 서있었는데 그 좌측에는 나신의 Hermes상, 그 우측에는 염소의 뿔을 잡고 있는 Hermes상의 아름다운 조각이 남아있었다.

거기에서 서쪽으로 더 가면 도심의 제일 번화가였던 Kouretes Street와 연결되는데 이곳에는 Trajan Fountain, Hadrian Temple 등이 나타나고 그 뒤쪽이로Terrace House(귀족들의 집), Skolatica Bath(학자들의 목욕탕), Latrina(공중화장실), Brothel(매음굴) 등의 유적이 남아있었다.

Kouretes Street의 끝부분에 그 유명한 Celsus도서관이 서있었는데 이곳은 135년에 Gaius Julius Aquilla가 그의 아버지인 Celsus를 위하여 지은 것이다. 건물의 대부분이 무너졌지만 외벽은 아직도 굳건히 서있어서 벽에 새겨진 화려한 문양과 글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는 Aquilla가 그 부친 Celsus의 성품을 잘 나타낸 네 가지 문구 Sophia(지혜), Episteme(지식), Ennoia(사상), Arete(미덕)을 새긴 조각이 아래층 기둥 밑에 있었다. 그 건물 지하에 여러 갈래의 길이 나있었는데 건너편에 있는 홍등가와도 연결되어있다고 하여 흥미를 끌었다.

도서관 바로 옆에 Mazeus와 Mithridate의 문이 서있는데, 이문을 나서면 바로 왼쪽으로 상업용시장(Commercial Agora)가 나온다. 이곳은 고대 Ephesus의 상업중심지였다 한다. 여기에서 바로 연결되는 도로는 대리석으로 깔려있어서 Marble Road라고 하는데, 이 길을 한참 따라가면 오른쪽(동쪽)으로 Amphitheater(원형대극장)가 나타난다. 산기슭의 경사와 높이를 이용하여 3층으로 지어진 대극장은 연극, 공연, 시민회의 등이 열리던 곳이었지만 검투사 혼은 맹수들과의 격투기가 벌어지기도 한 곳이다. 아마도 사도 바울이 선교집회를 하다가 잡혀서 고난을 겪은 곳도 이곳으로 추정된다. (사도행전 19:21-41)

이번 여행에서는 시간관계상 The House of St. Mary(성모마리아의 집), The Church of St. John(사도 요한교회), The Temple of Artemis(아르테미 신전) 등을 관람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보기로 하였다. 원형대극장을 관람하고 나오니 Marble Road에서 길이 직각으로 꺾여 해변 쪽으로 향하였는데 이 길이 바로 Harbour Street(Arkadiane Street)이다. 이 길을 따라 에게해의 휴양도시인 Kusadasi로 향하였다.

이 길을 달리면서 화려했던 고대도시 Ephesus가 멸망하게 된 원인에 관하여 설명을 들었다. 대규모 지진으로 인하여 건물과 시설이 파괴된 것은 복구도 할 수 있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 즉 시민들의 의식과 생활습관에 문제가 있었음을 전해 들었다. 시내에 만연해있던 목욕탕문화가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수많은 목욕시설에서 하루 종일 소일하다보니까 연료가 필요했다. 주변의 산에서 나무를 베어오니 산은 민둥산이 되고, 폭우가 내리면 산사태가 나고, 그 흙더미가 연안 바다를 메워서 그곳은 습지가 되면서 항구는 밀려나고, 해운통상 운수기능이 살아지니 도시로서의 기능이 쇠퇴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들으면서 그 당시 상황과 현재 우리의 현실을 비교해보았다.

저녁 무렵에 도착한 Kusadasi는 휴양도시답게 조용하고 깨끗했다. 옛날에 새들이 많다하여 “새들의 섬”이란 뜻으로 도시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저녁이 되니 해변이 더욱 아름답고 아늑했다. 우리가 유숙한 곳은 Charisma

Deluxe Hotel로서 역시 최고급호텔이었다. 하룻밤 쉬기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구비하고 이었다. 다음날 크루즈여행을 준비하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III. 환상적인 에게해 크루즈

여행 제6일째 되는 날 4박 5일의 일정으로 에게해의 5개 섬과 그리스의 Athene를 구경하는 크루즈여행을 떠났다. 유람선은 약 37,000톤의 작은 규모의 배로서 주로 Aegean Sea(에게해)와 그 연안을 운항하는 Louise Olympia호였다. 배가 작으나 별로 흔들리지는 않고, 선실이 작아 복층침대로 되어있어 오랜만에 2층 침대에서 잠을 잤다. 나흘간의 고생스런 밤이었지만 저녁에는 주로 식당이나 까페에 모여 밤바다경치도 즐기며 환담을 하느라 어렵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유람선과 기항지가 모두 그리스국적이었기 때문에 승선할 때 출입국수속과 세관통과의 절차를 밟았다.


(1) Patmos섬

정오를 조금 지나 Kusadasi항을 떠난 우리들은 왼쪽으로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남쪽방향으로 항해하였다. 터키와 그리스가 가장 가깝게 접해있다는 Samos해협을 지나갔다. 왼쪽으로는 터키의 울창한 숲을 보고 오른쪽으로는 그리스의 유명한 수학자 Pythagoras가 피신해 살았던 Samos섬을 쳐다보면서 약 50해리를 항해하여 첫 기항지인 Patmos섬에 도착했다. 오후 4시였다. 본선이 섬의 부두에 접안할 수 없으므로 거룻배(Tender Boat)를 타고 이 섬에서 가장 큰 포구인 Skala마을에 내렸다. 모두가 버스 편으로 이 섬의 수도인 Chora(호라)마을로 향하였다. Patmos섬은 오랜 역사를 가진 섬이었으나 Greco-Roman시대에는 정치범이나 사상범을 귀양 보낸 곳으로, 지금도 인구가 2,500명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섬이다. 그러나 해변에서 산꼭대기에 있는 Chora 마을로 가는 3km에 이르는 길의 주변에 흰색으로 칠한 거대한 저택들(Neoclassical Mansion)이 들어서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Chora마을에는 The Holy Cave of the Apoclapse (묵시의 동굴)과 The Holy Monastry of the Saint John the Theologian(사도 요한의 수도원) 등이 있고, 그 밖에 신학교, 기숙사, 성채들이 산재해있는데 이들은 2006년에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묵시의 동굴은 주후 95년 Domitianus황제의 박해로 이곳에 귀양되어온 사도 요한(The Theologian on Patmos란 별명으로 불림)이 묵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쓴 곳이다. 사도 요한의 수도원은 1088년 수도사 Christodoules Latrenos가 사도 요한의 행적을 기념하여 세운 수도원인데 규모가 상당히 컸지만 시간관계상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멀리서 만 보았다.

묵시의 동굴에는 모두가 들어가 보았다. 이 동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다섯 번이나 하얀 돌담을 돌며 좁은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동굴(Grotto) 천정에는 사도 요한이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면서 계시를 받을 때에 세 갈래로 갈라진 바위 틈새가 있었고, 전면에는 교회처럼 꾸며진 장식물들이 있었으며, 오른 쪽으로는 사도 요한이 기도하면서 머리를 대어 움푹하게 파인 바위와 일어날 때 짚었기 때문에 파인 손자국을 은으로 감싸고 있었다. 여기의 바위가 모래로 이루어진 수성암이기 때문에 이런 흔적이 남아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밖에도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썼다던 돌 의자, 제단, 벽화 등을 관람했다. 여기에 그려져 있는 사도 요한의 모습에 이마가 튀어나온 짱구로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좁은 공간에서 기도하다가 잠결에 앞에 있는 돌단에 이마를 들이받는 것이 반복되어 생긴 것이란 설명을 들었다.


(2) Rhodes 섬

오후 9시 가까이 되어 Patmos섬을 출발한 우리는 9층에 있는 Leda Restaurant에서 저녁을 들면서 항해를 계속했다. 음식은 양식 정찬이었는데 음료는 별도로 주문해야했다. 그 전날 Kusadasi에서 어 재희 회장께서 와인을 사셨기 때문에 한 식탁에 둘러앉은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와인을 대접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버렸다. 이날은 정 영의회장이 고른 그리스 Atalanti Valley의 로컬와인인 2007년산 Syrah를 땄다. Syrah품종은 호주에서 주로 생산되지만 이곳에서도 많이 난다고 했다. 맛도 수준급이었다. 남쪽으로 112해리를 약 10시간에 걸쳐 내려가서 다음날 새벽 7시경에 Rhodes섬에 도착했다.

이 섬은 에게해의 동남쪽에 위치한 12개의 도군(島群), 즉 Dodecanes Islands가운데 가장 잘 아려진 섬이다. 선사시대로부터 사람들이 살았으며, 복잡하고 다채로운 역사를 지니고 있어 그 건축물들도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섬주변의 언덕기슭에 바위장미(Rock Rose)꽃 들이 무성하게 피어있어 The Island of Rose(장미의 섬)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주위의 바다가 수정같이 맑은 한편, 햇빛도 눈부시고, 공기도 깨끗하며, 여러 가지 공원과 부대시설이 갖추어져 휴양지로서 적격인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섬에 10시간밖에 머무를 수가 없어 이러한 호사는 접어두고 바로 도시의 관광과 유물의 답사에 들어갔다.

Rhodes시의 항구로 접어들어서니 섬 언덕에 여러 개의 둥근 탑들이 눈에 들어왔다. 육지에 올라와서 주변을 살펴보니 이 도시는 거대한 성벽과 성채로 구성된 튼튼한 요새이었고, 그 탑들은 요새를 지키는 망루이었다. 이곳은 15세기경에 The Knights of St. John(성 요한의 기사단, 여기서의 성 요한은 사도요한이 아니고 세례요한을 지칭함)들이 이 섬을 점령하여 세운 곳이다. 이 기사들은 제1차 십자군원정이 있기도 훨씬 전인 11세기경부터 인도적인 봉사단체(Philanthropical Christian Order)로서 Jerlusalem에 순례여행을 하다가 병이 난 환자들을 치료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종교 군사적 단체(Religio-military Order)로 바뀌어 이 섬에 기사단병원을 세우고 대대적인 활동을 하였다. 이들이 사용하던 병원건물은 고고학박물관이 되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14세기 초 제1대 기사단장(Grand Master)이던 F. de Villaret로부터 16세기에 기사들이 Ottoman Turkey군에 쫓겨날 때까지, 모든 기사단장들이 기거하던 기사단장의 궁전(The Palace of Grand Master)도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 우리도 이 박물관은 세밀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지층으로부터 박물관 건물로 들어가면 북쪽으로는 “Rhodes시가 건립된 때(408 BC)로부터 로마시대까지의 모습”,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AD 4세기부터 터키에 점령되기까지(1522 AD)의 Rhodes시의 모습”이란 주제의 전시가 있었다. 이 전시는 영구히 상설되도록 설계되어있었다. 지상 1층에는 대회의실을 위시하여 기사단장의 집무실, 식당, 각종 장식물의 이름을 딴 방들이 즐비하게 널려있었다. 예를 들면 Trophy Chamber, Laocoon Chamber, Medusa Chamber, Tiger Chamber, Dolphin Chamber, Lantern Chamber, Annunciation Chamber, Chamber with Fishing Eros, Chamber of Nine Muses, 등 20여개의 방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Chamber of Sea-horse and Nymph였다. 이방에는 요정(Nymph)이 바다말(Sea-horse)을 타고 있는 모자익 바닥그림(Floor Mosaic)이 있는데 이것이 걸작품이라고 했다. 그 밖의 방에도 모자익으로 그려진 벽화나 양탄자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Greco-Roman시대나 Byzantine시대에 그려진 것이다.

오후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중세풍의 시가지를 둘러보았다. 시가의 도로가 조약돌로 포장되어 있어 옛날 길의 풍미는 살아있었지만 걸어 다니기에는 불편하였다. 그 밖에도 Rhodes시내에는 St. Nicholas의 요새, St. George의 감옥, 고대 Rhodes 의 Acropolis등의 관광 명소가 많았으나 도보로 다니다보니 많은 곳을 볼 수가 없었다.


(3) Crete섬

오후 6시에 Rhodes섬을 출발한 우리는 서남쪽으로 166해리 떨어져 있는 Crete섬을 향하였다. 에게해에서 가장 큰 섬인 Crete섬은 Minoa문명의 발상지이다. 13시간의 항해 끝에 Crete섬의 수도이자 지중해지방에서 가장 환상적이고 활기찬 도시인 Heraklion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지중해 동남부에 위치하여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세 대륙 교역을 중계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기원전 6,000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기원전 3,000년부터는 부족단위의 도시국가를 형성했다. Heraklion시내에는 자연사박물관, 고고학박물관, 역사박물관 등의 여러 개의 박물관이 있고, St. Titos교회, St. Mark교회, St. Andrew교회, St. Mattheus교회 등의 수많은 교회당이 있었으며, Bethlehem감옥, Jesus감옥, St. Andrew감옥 등 여러 개의 감옥들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Venetian 항구 쪽에는 Koules해변요새 등 많은 유적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바로 버스 편으로 Knossos에 가서 Minoan Palace(미노아 궁정)만 관람했다.

그리스신화에 의하면 Crete섬은 모든 Olympus신들의 수장격인 Zeus가 태어난 곳인데, Zeus가 낳은 아들 Minos가 이 섬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세운 미노아문명(Minoan Civilization)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이다. 전설에 의하면 미노아왕궁에는 미로(Labrynth)가 설계되어있는데 그 안에 사람의 몸에 황소의 머리를 한 괴물, 즉 Minotaur가 살고 있었다. 이 미로에 익숙하지 못한 외부인은 그 속에 들어가면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므로 Minotaur는 그 속에 살면서 Athene시민들을 괴롭혀왔다. 그래서 Athene시민들은 매년 일곱 청년들과 일곱 처녀들의 피를 공물로 바쳐 이 괴물을 먹여야했다. 여기에 Athene의 영웅 Thesus가 Minos왕의 딸인 Adrian공주의 도움을 받아 Minotaur를 죽여 더 이상 공물을 바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지은 왕궁은 1,700 BC에 일어났던 대지진으로 파괴되고, 그 후 후기왕궁시대(1,700 - 1,450 BC)에 Knossos를 위시하여 Phaestos, Malia, Zakro, Kydonia 같은 도시에 화려한 왕궁들을 신축하여 왕의 거처로 삼았다.

그 가운데 Knossos의 왕궁은 Heraklion도심에서 5km밖에 떨어져있지 않으므로 짧은 시간에 관람이 가능하였다. 이곳은 넓이가 22,000sq.m밖에 되지 않지만 수 많은 건물이 지어져 있고 그 가운데 왕궁이 들어서 있었다. 그 내부에는 다양한 색채의 Fresco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그림의 내용은 투우, 종교의식 등과 궁 안의 삶을 그린 것들이었다. Knossos의 건축, 회화, 수공예, 도요문화, 극장, 오락, 동전, 교역 등은 Minos문화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이 Knossos에서 청동으로 만든 Minotaur의 반신상 한 개를 사와서 Crete섬 방문 기념으로 우리 집 장식장 한구석에 진열해두었다.


(4) Santorini섬

아쉬움을 뒤로한 채 북쪽으로 67해리 떨어져있는 환상의 섬 Santorini로 향했다. 이 섬은 에게해 남쪽에 있는 Cyclades도서군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면적은 76sq.km, 인구는 7,000여명이다. 기원전 1628년부터 일어난 수차례의 대규모 화산폭발로 섬의 중심부가 물속으로 갈아 안고 화산분화구(Volcano Crater)의 가장자리가 수면위로 솟아나와 몇 개의 섬을 이룬 것이다. 따라서 이 섬의 모양이 초승달같이 생긴 것도, 섬의 둘레가 단애(斷涯)로 된 것도 이해된다.

이 섬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가 좀 지나서였는데 햇빛을 등지고 멀리서 섬을 볼 때에는 섬이 나지막한 산으로 이루어졌고 그 산정에 눈이 쌓여있는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섬에 가까이 다가가자 섬은 적갈색의 단애로 마치 큰 벽같이 보였으며, 그 위에는 흰색 또는 옅은 청색으로 칠한 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환상적이었다. 그래서 이 섬은 그리스 전역에서도 단일한 경치로는 단연 으뜸가는 풍광이라고 한다. 이 섬은 역사적으로도 흥미로운 곳이다. 이곳에는 선사시대에서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Crete섬의 Minos문명보다 훨씬 앞선 Cyclades문명이라는 화려한 역사를 갖고 있었는데, 그 문명이 어느 날 갑자기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사람들은 이것이 Plato의 글에 나오는 환상의 대륙 Atlantis가 아닌가하고 생각한다. Santorini섬이란 이름은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부르는 이름이지만 그리스에서의 정식명칭은 Thira섬이다.

이 섬의 수도인 Fira는 서쪽해안에 접해있는데 집들은 대부분 단애의 정상에 있기 때문에 해안에서 그곳으로 가는 데는 케이블카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비탈길을 올라가거나, 아니면 가파른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이 항구에도 큰 배가 접안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거룻배를 타고 상륙하여 버스 편으로 Fira시의 중심부로 올라갔다. 그 꾸불꾸불한 버스길에서는 푸른 바다, 해안선, 멀리 보이는 이웃 섬 등의 경관을 마음껏 즐기면서 오르내릴 수 있었다.

언덕위에 있는 Fira시에는 거의 모든 건물이 흰색으로 칠해져있고 가끔 청색지붕을 한 교회당이 있어 멀리보이는 파란 바다와 어울려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자유 시간에 거리를 거닐다가 미술품이 걸린 가게에 들어갔더니 가게 주인인 덧 한 중년의 여인이 마침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깨끗한 하얀색의 네모난 집들 가운데 희랍정교회의 둥근 돔(Dome)이 파랗게 서있고, 그 꼭지에 예쁜 십자가가 붙어있으며, 그리고 한쪽 귀퉁이에 수도원건물이 걸쳐있는 그림이었다. 우선 청순하고 아름다워서 얼마 되지도 않은 돈, 달라는 대로 주고 들고 나왔다. 무명의 화가가 그린 그림이지만 집에 와서 표구를 했더니 전혀 싸구려그림 같지를 않고 사무실에 걸어놓기에 알맞은 그림이었다. 시간이 넉넉하니 골목길을 누비며 기념품가게, 보석상점, 간단한 의상이 걸려있는 가게들을 기웃거렸다. 좀 떨어져있는 곳에는 수도원, 교회당, 박물관 등이 있었지만 이 섬에서는 경치에 취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5) Athene시

불과 4시간 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Santorini섬의 아름다운 잔영을 머리에 싣고 그리스의 Athene로 향했다. Santorini에서 서북쪽으로 131해리를 약 10시간에 걸쳐 항해하여 Athene시의 관문인 Piraeus항에 도착했다. 이날 항해에서는 저녁식사를 4층의 Aegean Restaurant에서 가졌다. 양식 정찬이 준비되었는데 내가 와인을 살 차례였다. 터키에서부터 계속 로컬와인만 마셨기에 이번에는 France Wine으로 2012년산 Beaujolais Villages를 골랐다. 별로 비싼 와인은 아니지만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비교적 순한 와인이라, 그리고 분위기 탓이겠지만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Piraeus항에 도착한 것이 새벽 6시. 전용차량으로 Athene관광에 들어갔다. 그리스의 수도이자 인구 400만의 도시인 Athene는 3,000여년의 역사를 가졌기에 이곳저곳에 수많은 유적, 유물이 널려있다. 그러나 그 중심지는 고대도시국가 Athene의 Acropolis이고, 이곳에 남아있는 Parthenon신전과 박물관 등이 중요한 관광지이다. 우리들의 크루즈는 이곳에 4시간밖에 할애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주변의 관광도 서둘러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산꼭대기(Acros)에 세워진 도시(Polis)에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긴 했지만, 도로포장이 잘되어있고 완만한 계단이 놓여있어 나이 많은 사람들도 어렵잖게 따라다닐 수 있었다. BC 6세기경에 세계최초의 민주주의국가가 설립되어 BC 5세기에는 Pericles시대에 접어들면서 화려한 문명을 이루었다.

계단을 올라가 Acropolis에 들어가는 입구에 Propylaia(입구건물)의 돌기둥이 남아있었다. 이 건물의 특징은 전혀 조각품이 붙어있지 않고 두 개의 Ionia식 기둥머리 (Ionic Column Capital)만이 장식된 것이다. 입구에 들어가기 직전 오른쪽에 The Temple of Athena(아테나 신전)라는 작은 건물이 있는데 일명 날개가 떨어진 Nike(Wingless)의 신전이라고도 불린다. 그 연유는 Athene Nike란 여신이 이도시를 지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준 것을 기념하여 신전을 지었는데, 혹시 이여신이 날아 가버릴 것을 걱정하여 날개를 잘라 버렸다는 것이다.

좀 더 내부로 들어가면 여러 개의 성소(Sanctuary)가 있고, Parthenon신전 뒤에 Erechtheion신전이 있는데 Parthenon신전의 위용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실은 매우 중요한 신전이다. 그 이유는 매 4년마다 열리는 Panathenaia축제 때 이 신전은 이곳에 안치된 Wooden Effigy(목신, 木神)의 옷을 갈아입히던 곳이었기 때문이란다. 이 신전의 구조는 네모반듯하지 않고 복잡한데,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에 증축, 개축을 한 까닭으로 보고 있다.

이제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니 가장 높은 곳에 대망의 Parthenon신전이 나타났다. 이곳은 전쟁과 지혜의 신이자 Athene의 수호신이기도한 Athena Parthenos여신을 모시던 곳이다. 이 건물은 고대 그리스 건축물 중의 최고봉이며, 인간이 지은 구조물가운데 가장 완벽한 작품이란 찬사를 받고 있다. 한편 이곳은 “Pericles의 황금시대”가 내어놓은 건축물의 최대 걸작 품이라고 들 한다. 규모가 크며 균형이 잘 잡혀있는데다가 Column Capital(주두, 柱頭)는 Dorian Style이며, Pediments(박공머리, 牔栱)에는 그리스 신들이 나란히 새겨져있고, 건물내부도 수많은 조각품들로 장식되어있었다. 이 조각품과 장식물들은 여러 조각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에 Parthenon신전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Athene시내에는 여러 용도의 집, 신전, 도서관, 원형극장, Agora 등이 있으며, 그 어디에선가에는 사도 바울이 그 유명한 선교연설(사도행전 17: 1- 34)을 한 Areopagus도 있을 것이다.


(6) Mykonos섬

오전에 Athene의 Acropolis 관광을 마친 우리는 이 크루즈의 마지막 기항지인 Mykonos섬으로 향하였다. Piraeus항에서 동쪽으로 96해리를 달려 오후 6시경에 도착한 이 섬은 Cyclades제도의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섬의 수도는 서쪽해안에 있는 Chora(Mikonos)항인데 접안시설이 되어있지만 많은 배들로 붐벼서 거룻배로 상륙했다. 이 섬의 역사도 다양하여 BC 3,000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도 있지만, 대체로 BC 11세기에 Ionia인들이 정착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Athene동맹(Athenian Confederacy)에 가담하지 못 할 정도로 존재가 미미하다가 Byzantine시대와 Ottoman시대를 거쳐 1615년의 Myconia공동체(Commune of Mykoniate)를 결성한 뒤로 빛을 보게 되었다. 그 후 18세기에 들어서는 상업과 관광업이 번성하여 많은 부를 쌓았다.

이 섬에서도 4시간의 자유시간이 허락되어 옛 도심으로 해서 해변에 이르는 풍광을 여유 있게 관찰했다. 우선 Venetian Fortress(Kastro)의 유적과 그 주변에 있는 The Church of Virgin Paraportieni를 보았는데 이곳은 이 섬의 Landmark(육표, 陸標)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섬 안에 400여개의 교회건물이 있지만 이 교회당은 그 가운데 가장 특이한 건물이다. Byzantin양식, 서구식양식, 지방 특이한 양식이 혼합되어 지어진 건물인데, 언덕에 높이 솟아있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도시의 남쪽해안으로는 목조 발코니가 있는 그림 같은 집들이 바로 해변에 붙어있어서 “Venice of Mykonos"란 별칭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 섬 안쪽으로 들어가 토산품가게와 귀중품가게를 둘러보다가 반대편 해변 쪽으로 내려오니 긴 백사장에 휴양객들이 북적거리고 각종 토속음식점과 까페가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약속시간이 다되어 집결지로 향하여 걸어가니 도시의 중심부에 이 섬의 Landmark인 대성당과 교회의 건물이 우뚝 서있고, 그곳에서 좀 떨어진 해변 쪽으로 4개의 특이한 풍차(Windmill)가 서있었다. 마침 석양을 받아 예쁜 모습을 뽐내고 있으니 가히 이 도시의 Trade Mark(상표)라 할 수 있었다. 사진 몇 장이 또 찍혔다.

Mykonos시내에도 고고학박물관, 민속박물관, 해양박물관, 시립도서관 등의 구경거리가 있었지만 시간관계로 둘러볼 수가 없었다. 이 휴양지에는 남쪽해변을 따라 Kala Fatis, Elia, Agia Anna, Orno 등의 아름다운 해변유원지도 있고, 한 쪽에는 Nudist(나신족, 裸身族)들만이 즐기는 낙원도 있다고 들었다.



IV. 집으로 가는 길

(1) 선상에서의 마지막 밤

전설의 땅 에게해의 마지막 기항지 Mykonos섬을 뒤로한 채 유람선은 동쪽으로 99해리를 달려 이번 크루즈여행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Kusadasi항으로 향하였다. 우리들은 우선 9층의 Leda Buffet Restaurant에서 Greek Meze정찬을 들고, 7층의 Eclipse Bar나 혹은 5층의 Muses Lounge로 뿔뿔이 헤어져 내려갔다. 크루즈의 마지막 밤을 재미있게 보내기위하여 잠을 설치더라도 이 밤만은 더 많이 떠들고, 더 오래 웃자고 했다. 크루즈여행이라면 선내에서 댄스, 카지노, 가라오케, 수영, 오락, 영화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지만 우리일행들은 거의 모두가 밤에는 자고, 낮에는 먹고 보는데 만 몰두하는 모범생들이었기에 이 마지막 밤을 예사롭게 보내는 것이
아쉬웠다.


(2) Sirince(쉬린제)마을

8시간의 항해 끝에 새벽 7시에 Kusadasi항에 도착한 우리들은 다시 출입국수속과 세관검사를 거쳐 터키 땅을 밟았다. 이제는 Istanbul로 가는 공항이 있는 Izmir로 가는 일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비행기 탑승시간까지 상당한 시간의 여유가 있어 인근에 있는 Sirince마을을 관광하도록 계획이 되어있었다.

Sirince마을은 Selcuk에서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8km정도 올라가 있었다. 이 마을은 1923년 터키와 그리스간의 인구교환을 할 때, 이곳에 살던 그리스인들이 정든 집을 버리고 고향으로 떠나면서 터키인들이 그 집을 인수하여 살게 된 곳이다. 그 당시에 만들어진 붉은 지붕에 하얀 벽돌, 수많은 창문이 나있는 그리스양식의 집들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주변에 포도나무를 위시한 여러 가지 과일나무가 많아 포도주와 기타 과일주가 유명한 곳이다. 올리브나무들이 널어서 있는 산길을 따라 마을 끝까지 둘러본 뒤에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Ocakbasi Restaurant이란 유명한 Kebap House에서 Local Wine을 곁들여 먹은 Kebap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큼 맛있었다.


(3) Izmir

공항이 있는 도시 Izmir는 인구 380만의 터키 제3의 도시이다. 20세기 초에 그리스와의 독립전쟁 때 도시가 파괴되어 옛날도시의 유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지금은 지중해연안의 무역도시로 번창하고 있다. 이도시의 옛날이름은 Smyrna인데 시인 Homerus의 탄생지로 유명하다. 신약성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하나인 서머나교회가 서있던 도시이다(요한계시록 2:8). 이도시의 옛 이름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Smyrna공주가 부왕을 짝사랑하다 일어난 비극의 주인공 이름에 유래했다는 사연을 읽으면서 Istanbul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 Istanbul관광 (제2차)

Istanbul에 도착한 것이 오후5시가 지나서였으니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에 들어가기로 했다. 저녁은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Beyti Restauant에 예약이 되어있었는데 전통적인 터키식 정찬이 준비되어있었다. 식당의 위치, 건물, 분위기는 물론이고, 정장을 한 식당주인이 와서 손님들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는 것이 최고급 음식점에 틀림없었다. 이 나라를 찾는 국빈들을 대접하는 식당이란 것을 들었다. 음식 맛은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달리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이번여행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저녁을 먹었다. 일정의 마지막 밤을 보낸 숙소도 5성급의 고급호텔이었다. Hilton Istanbul이었는데, 도심 가까운 곳에 있어 볼거리들이 많았고 잠자리, 먹거리 등이 모두 만족스러웠다. 다음날은 지난번에 남겨두었던 곳을 관광하고 바로 귀국하는 일정이 계획되어있었다.


1. 성Sophia성당(Hagia Sophia, Ayasophia)

성Sophia성당은 Istanbul관광의 꽃이라 할 수 있다. Istanbul을 소개하는 책자에는 언제나 표지에 상표처럼 등장하는 곳이다. 로마에 성 베드로성당이 지어지기도 전 AD 325년에, 그리스도교를 승인한 Constantianus대제가 Constantinople(현재의 Istanbul)에 성Sophia성당을 세워 그리스도교회의 중심 예배 처로 삼았다. 그 후 AD 532년에 Justianus대제의 명에 따라 크게 증축되고, 약 1,000년간의 Byzantine시대에 걸쳐 개축을 거듭하여 지금의 아름다운 건물이 되었다. 그러나 Ottoman제국이 들어서면서 약 500년간은 이스람교의 Mosque의 역할을 했다. 건물주위에 4개의 Minaret이 세워지고, 내부에 그려진 Mosaic벽화는 모두 회칠로 덮이고 이스람교의 Coran의 금문자와 문양들로 채워졌다. 그러던 것이 Turkey공화국이 수립되면서 Mustafa Kemal Ataturk에 의해서 회칠을 벗겨내고, Byzantine시대의 Mosaic벽화를 재현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만들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성Sophia박물관에는 다른 여느 박물관과는 달리 보물이나 조각품이 없고 단지 건물과 그 벽에 그려져 있는 Mosaic성화가 전시품의 전부이다. 그래도 이박물관은 Istanbul의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이것은 아직도 회칠을 아주 완전히 제거하지 않아 그리스도교와 이스람교가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회칠이 완전히 제거된 벽화 중에서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에게 Justianus황제와 황후가 보물 함을 드리는 그림과 성Sophia성당과 Constantinople의 모형을 예수님에게 바치고 있는 Justianus황제와 Constantianus황제의 그림이 가장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성Sophia박물관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는 Mosaic은 남쪽화랑에 그려져 있는 Deeis Mosaic이다. 회칠이 벗겨지지 않은 부분이 많이 남아있지만 가운데 그려져 있는 예수님에게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인간의 구원을 탄원하는 벽화로서 Byzantine예술의 걸작중의 하나로 꼽히는 벽화이다. 건물내부는 Narthex(입구)를 지나 Nave(본당)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Dome(천정)으로 덥혀 있는 건물이 되고, 본당 좌우에는 Gallery(화랑)이 둘러있는 전형적인 Byzantine교회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2. Blue Mosque (Sultan Ahmet 사원)

성Sophia박물관에서 큰 길을 건너면 바로 Blue Mosque가 눈에 들어온다. Istanbul시내에만 해도 수십 개의 크고 작은 Mosque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사원이다. 17세기 초 14대 Sultan인 Ahmet I세가 건립한 것으로 성Sophia성당에 맞먹는, 아니면 더 웅장한 Mosque를 지은 것이다. 그러나 그 규모는 더 크지만 아름답기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

이 Mosque에는 터키전역에서도 유일하게 6개의 Minaret이 서있는데 그 이유는 언어상 오해에서 온 것이란다. 터키어로 금이란 말이 6이란 말과 비슷한데, Ahmet I세 Sultan이 금으로 장식하라는 말을 시공자가 6개로 만들란 말로 잘못 알아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Dome과 Minaret의 색깔, 내부 바닥의 카펫과 벽의 타일 등의 색깔이 모두 파란색으로 되어있어 Blue Mosque란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Dome에는 200개가 넘는 작은 창이 나있고, 모두 Stained Glass로 장식되어있어 이곳을 통해서 들어온는 햇살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3. Topkapi궁전

Topkapi궁전은 Golden Horn해협, Bosphorus해협, Marmara해로 둘러싸인 반도에 건설된 거대한 성이자 요새이다. 로마시대에서부터 있던 요새에 Sultan들이 집무실을 건축했는데, 지진으로 붕괴되어 다시 짓고 더욱 확장하여 궁전으로 만들었다. 군사요충지로 바다 쪽으로 성을 쌓고 대포들을 포진한 것이 지금도 남아있었다. 그리하여 Top(대포), Kap(문), Palace(궁전)이란 낟 말이 합쳐져서 Topkapi Palace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곳에는 16세기부터 Ottoman제국의 Sultan들의 거실, 정사를 논의하던 의사당, 여인들이 거처하던 Harem이 있었고, 제2정원의 오른쪽에는 굴뚝이 달린 큰 부엌이 있는 집들이 여러 채 있어서 거대한 마을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모든 것을 다 둘러볼 시간이 없었지만 각국에서 가져온 여러 가지 보물들이 여러 방에 나누어 진열되어있어 몇 가지는 구경할 수 있었다.


4. 고고학박물관(Archaeological Museum)

Topkapi궁전의 제1정원에 위치하고 있는데, 궁전을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 피곤하여 많은 분들은 관람을 포기하였지만 우리 몇 사람은 잠시 둘러보았다.

사실 Istanbul에서 가장 볼만한 곳 가운데 하나라는 평을 받는 곳이다. 선사시대의 유물로부터 Troy에서 발견된 보물, Greco-Roman시대의 신들의 동상, Byzantine 및 Ottoman Turkey시대의 유물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Alexander대왕의 석관, 그밖에도 여러 인물들이 부조되어있는 대리석석관, 약3,300년 전에 무게를 잴 때 사용하던 오리모양의 저울추, 세계 최초의 국제평화조약인 Hittite제국의 Kadasi조약의 원본 점토판 등이었다.



V. 덤으로 보낸 하루

Istanbul관광 (제3차)

마지막 일정을 끝낸 일행들을 송영하고는 정 장관 내외와 우리 내외만이 남았다. 원래 서울에서부터 모처럼 멀리 터키까지 가는데 우리는 하루 더 쉬면서 못 다한 나머지 관광을 마무리하기로 작정을 했다. 정 장관 내외의 금혼을 축하는 뜻도 있어 우리끼리 남아서 느긋하게 재미있고 뜻 깊은 하루를 보내자고 다짐했다. Istanbul관광을 이틀 동안이나 했으니 무엇 또 볼게 있겠느냐고 생각했는데 실은 마지막 날에 덤으로 지낸 하루가 그 간의 어느 날 못지않게 재미도 있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1. Ciragan Palace Kempinski Hotel

Hilton Hotel에서 하룻밤을 더 지내고, 그 다음날 아침 우리는 숙소부터 옮겼다. 이 상엽이사에게 값은 비싸더라도 좋으니 Istanbul에서 가장 좋은 호텔에 예약해달라고 부탁했었다. 호텔에 도착해보니 해변에 있는 초현대식 건물인데, 바로 옛날에 왕궁으로 썼던 곳을 증개축하여 호텔로 만든 곳이었다. 옛날의 정취도 맛볼 수 있으면서도 요즈음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방에 앉아서도 왼쪽에 Bosphorus교를 내다볼 수 있고, 해협 건너편으로는 아시아측 Istanbul인 Uskudar지방과 그 앞에 있는 Leander탑(Maiden Tower)을 볼 수 있었다. 아침 일직 일어나서 해변을 걸었다. 정원에 잘 가꾸어놓은 튜립과 장미꽃 덩굴을 보면서 맑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니 지난 며칠간의 피로가 완전히 가셨다.

Ciragan궁전은 1718년 Sultan Ahmet III세가 Yali(해변에 지은 빌라식 별장건물)를 지어서 황후에게 준 것이 시초였다. 그녀는 그곳의 정원에서 Ciragan축제를 열곤 했는데, Ciragan이란 말은 페르시아어로 “Special Light Source"란 뜻이란다. 그 후 Sultan Mahmet II세가 그곳의 모든 건물을 헐어버리고 거대한 목조건물을 지었다. 이것을 1871년 Sultan Abdulaziz가 서양식 석조 건물로 개조한 것이 지금의 건물이다. 1909년에는 잠시 의사당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1910년의 대화재로 내부 장식품이나 책들이 소실되어버리고 1987년에 다시 복구되어 Kempinski Group에 경영을 일임하는 호텔이 되었다. 이 왕궁건물에는 식당과 큰 회의장이 있고, 몇 개의 Royal Suite Room이 있는데 그 숙박료는 무지하게 비싸다고 들었다.


2. Bosphorus해협과 Bosphorus교

Bosphorus는 Asia와 Europe을 갈라놓고, Black Sea(흑해)와 Marmara Sea를 이어주는 해협이다. 길이는 31.7km인데 아시아 쪽 해변의 길이가 35km인가하면 유럽연안은 55km에 달한다. 양측 해안 간의 폭은 50-120m인데 흑해 쪽의 넓은 곳은 3.4km에 달한다. 해협의 물살은 시간당 3-4km로 빠른 편이며, 상층에서는 흑해에서 Marmara해 쪽으로 흐르지만 하층에서는 반대방향으로 흐른다. 지질학적으로는 제4지질연대에 지각 판이 무너져서 생긴 것인데 약 7,500년전에 지금의 형태를 이루었다고 한다.

Bosphorus란 지명은 희랍신화에서 유래한다. Zeus가 자신의 애인인 Io를 자기부인 Hera의 질투심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암소로 만들었는데, Hera가 이를 눈치 채어 파리를 Io에게 보내어 그녀를 괴롭혔다. 그래서 Io는 이파리를 피해 도망 다니다가 이 물길을 건넜다고 한다. 그래서 이 물길을 Bous(암소)가 건는 Phorus(대문)란 뜻으로 Bosphorus라고 한다. 양쪽 연안에 수많은 왕궁, 교회, Mosque, 성채들이 들어서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이 해협 중간 지점에 있는 Bosphorus교는 아시아지역과 유럽지역을 연결하는,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긴 현수교(Suspension Bridge)이다. 1950년대부터 건설계획이 추진되어오다가 1973년 10월 29일에 터키공화국 수립 50주년을 맞이하여 완공되었다. 길이 1,560m, 넓이 33m, 165m 높이의 교주(橋柱)간의 길이가 1,075m인 이 다리를 하루에 오가는 차량이 20만대, 사람이 60만 명이라고 한다. Istanbul근해의 해안 Boat Tour를 할 때 이 밑으로 지나가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저녁에 우리 호텔에서 본, 불을 켜고 있는 다리 모습은 정말 예뻤다.


3. Chora Kariye박물관

덤으로 보낸 마지막 날의 Istanbul관광은 Chora박물관에서 시작했다. 이 박물관은 Istanbul시가의 서쪽 끝 성벽 가까이 Edimekapi지역에 있다. Constantianus황제에 의해서 건립된 수도원이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박물관이 된 것이다. Chora란 뜻은 그리스어로 도시의 성벽 밖이란 뜻이다. 처음 이 Chora수도원을 지을 때는 성벽 밖에 지어졌으나 후에 도시가 커지면서 성벽을 개축할 때 성벽안쪽으로 들어왔지만 Chora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박물관의 정식명칭은 Chora Kariye박물관이데, 이것은 이곳이 박물관이 되기 직전에 이스람교의 Kariye Mosque였기 때문이다.

Constantianus황제 때 지어진 Chora수도원은 대지진을 겪고, 또 Latin족의 침공으로 수난을 받아 폐허가 되었다. 이것을 Andronikos II세 때 그의 재정장관이던 Theodore Metochites에 의해서 복원되었고, Byzantine시대에는 천정과 벽면에 Mosaic화 및 Fresco화가 장식되어 찬란한 황금기를 누렸다. 그러나 Ottoman Turkey가 이 지역을 장악한 뒤에는 Kariye Mosque로 변했는데 다행히도 건물은 그대로 보존되고 주위에 몇 개의 Minaret이 생긴 정도였다. 내부의 미술품은 나무판 (Wooden Curtain)으로 덮거나 물감(Paint)으로 덧칠을 했으므로 Turkey공화국 때에 이를 청소해서 복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박물관의 Mosaic화나 Fresco화는 다른 어느 박물관에서 보다 더 선명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Chora박물관의 입구에 들어서면 Outer Narthex(외전실, 外前室)가 좌우로 전개되는데 왼쪽으로부터 예수님의 출생, 애급에로의 피신, 요단강에서의 수세, 광야에서의 시험 등에서부터, 가나의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 질병치료의 기적 등의 장면을 그린 Mosaic벽화가 가득 차 있었다. Inner Narthex(내전실, 內前室)로 들어가면 왼쪽Dome(천정)에는 성모 마리아의 족보를, 오른쪽 Dome에는 예수님의 계보를 그린 Mosaic천정화가 눈에 띄었다. Naos(본당)으로 들어서면 좌우의 입구기둥에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Mosaic화가 서있고, 그 안쪽으로는 Theodor Metochites가 이 교회당의 모형을 예수님에게 바치는 Mosaic벽화가 그려져 이었다. 바로 연결되는 별관에는 Parecclesion(Cemetry Chaple)이 있었다. 여기에는 최후의 심판을 그린 Fresco천정화로부터 Anastasis (Greek Orthodox교리에서 주장하는 예수님께서 내려가셨다오신 지옥)Fresco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주제를 그린 Fresco화들이 잘 보존되어있었다.


4. Galata Tower 와 Galata Bridge

Chora박물관광을 마치고 택시를 잡아 Galata탑으로 가자고 했더니 Ataturk교를 지나 Beyoglue지방의 Galata지역에 데려다주었다. 탑 주위에는 탑에 올라가려는 관광객들이 적어도 100명은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탑에 무엇이 있는 가고 물어보았더니 전망대가 있고 식당도 있어 한번 올라가 볼라만 하다고 하였다. 오랜 시간이지만 기다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줄을 섰다.

Galata지역은 Byzantine시대에 주로 Genoa인과 Venice인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그때의 유적이라고는 Galata Tower와 Arabian Mosque밖에 없다. Galata탑은 Istanbul에서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탑이다. Byzantine황제 Anastasius에 의하여 528년에 등대역할을 하기위하여 목조건물로 지어졌다. 그러나 1348년에 Genoa인들이 외적에 대한 방어용으로 석조 건물로 다시 지어서 Christea Turris (Christ Tower)라고 불렀다. Istanbul이 Ottoman Turkey에 함락되면서 이 탑은 감옥, 창고, 등대, 소방망대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 탑은 높은 언덕 위에 지어졌는데 또 지상으로 97m의 높이로 올려 세워졌기 때문에 시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위로 올라가보니 정말 사방으로 전망이 확 티어서 Bosphorus해협, Golden Horn해협, 그리고 Marmara해까지 다 보이고, Galata교는 물론이고 그 건너편의 왕궁, 교회, 성채 등이 한눈에 다 내려다보였다. 오래 기다린 보람이 넉넉했다. 음식점에는 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있어 이번에는 이를 포기하고 밑으로 내려왔다. 점식 식사할 곳을 찾는데, 이상엽이사가 귀띔 해준 것이 생각나서 Galata교 쪽으로 걸어갔다. 다리 양측으로 펼쳐진 Golden Horn해협의 경치를 구경하면서 Eminonu선착장으로 갔다. 거기에는 선착장과 작은 배들 위에 Kebap House를 지어놓은 곳이 여러 군데 널려 있었다. 가장 크고 깨끗한 곳을 찾았는데 고등어Kebap을 위시하 여 여러 가지 모듬생선Kebap이 있었다. 여행 초기에는 터키식 요리가 이상하더니 좀 익숙해지니 음식 맛에도 조금씩 적응하게 되는 것 같았다. 식후에는 성Sophia사원 쪽으로 걸어가서 그 전날에 눈여겨 보아두었던 Boat Tour를 하기로 하였다,


5. Istanbul근해의 Boat Tour

Boat Tour는 성Sophia사원 뒷길로 해서 해변을 따라가면 Armada Hotel이란 조그마한 호텔이 있는데 바로 그 앞에 있는 보트선착장에서 시작했다. Bezak Travel이란 선박회사가 운영하는 50인승 정도 되는 작은 Ferry Boat를 타고 약 2시간 30분에 걸쳐 관광하는 것이었다.

4시 정각에 출발하여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니 왼쪽해변에 Topkapi궁전이 성벽에 둘러싸인 채 나타났다. 계속해서 Golden Horn해협으로 들어가니 Eminonu지역에서는 Galata교를 지나면서 Galata탑을 볼 수 있었고, 계속 안쪽으로 들어가 Ataturk교를 바라보면서 되돌아 나왔다.

이번에는 북동쪽으로 향하여 Bosphrus해협으로 들어갔다. 서쪽해변을 따라 Besiktas지방으로 올라가면서 Dolmabahce궁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지나가다가 우리가 투숙한 Ciragan궁과 Kempinski호텔을 보았다. 곧 이어 나타난 Ortakoy지방에서는 Ortakoy Mosque를 보고 Bosphorus교의 현란한 Suspension Chord를 보면서 그 밑으로 북상했다. 흑해 쪽으로 한참 더 가서 Sariyer지방의 Rumeli요새를 구경하면서 Faith Sultan Mehmed교 앞에서 남쪽으로 돌아 나왔다.

이번에는 Bosphrus해협의 동쪽해변을 따라 내려왔는데 Kanlica지방에서는 Anadolu요새와 Beylerlei궁을 쳐다보면서 어느새 Bosphorus교까지 왔다. 여기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노래가사로 유명한 Uskudar지방이 나타나고 그 앞에 Leander's Tower (Maiden's Tower)가 서있는 조그마한 섬이 나타났다. 가까이에서 이탑을 보니 역시 아름답기가 짝이 없었다. 이 섬을 둘러보면서 Marmara해에 나와서 Topkapi궁의 담벼락을 쳐다보면서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정확히 6시 30분이었다.


육지에서 관광을 할 때에는 다리도 아프고 피곤했는데, 보트관광에서는 편안히 앉아 많은 곳을 스치면서 구경했다. 다만 너무 얇은 옷을 입고나와 바닷바람과 싸우느라 고생 좀 했지만.


6. 마지막 날의 마지막 만찬

Boat Tour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서는 정 장관 내외의 금혼을 축하하면서 거창한 만찬을 가졌다. 이 저녁은 호텔내의 Laledan Restaurant에서 프랑스식 정찬을 들었다. 곁 더린 와인으로는 Kavaklidere란 Greek Red Wine인데 가격도 꽤 비쌌고 맛도 아주 좋았다. 식후에 다시 밤바다를 구경하며 산책을 즐겼는데, 불을 켠 건너편 Uskdar지방의 야경과 Maiden Tower의 예쁜 모습, 그리고 왼쪽에 걸쳐있는 Bosphorus Bridge의 장관은 아침 산책 때와는 또 다른 절경이었다.



VI. 관광을 마무리하면서

이번 여행은 2주간이란 짧은 기간에 동서양에 걸친 막대한 문물을 압축하여 구경한 관광투어였다.

지역적으로는 Asia와 Europe에 걸쳐, 시간적으로는 Greco-Roman시대, Byzantine시대, Ottoman Turkey시대를 넘나들며 관광했다. 종교 문화적으로는 Greece신화, Christ교, Islam교를 훑어보았으며, 교통수단으로는 항공, 육로, 항해등 모든 방편을 이용하였다.

나 개인적으로는 Christian으로서 기독교성지를 눈여겨 찾아다녔다. 사도 바울이 3차에 걸친 선교여행 때 들렀던 곳을 찾아보았으며,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았던 Patmos섬, 그리고 그곳에서 예언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등의 위치를 알아보았다. 한편 로마의 박해를 받아 숨어 지내던 초대 기독교의 동굴교회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 또 Roman시대의 Roman Catholic교회와 Byzantine시대의 Greek Orthodox교회의 예배당과 미술품들을 감상하고, 십자군전쟁 때 성 요한 기사단의 격전지인 Rhodes 섬도 가보았다. 그렇게 되니 이번에 뜻하지도 않게 성지순례를 겸했다고도 할 수 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와서 그간의 여독을 풀고 있는데 여행 때 스냅으로 찍은 사진들이 작은 앨범으로 엮여 집으로 보내왔다. 정말 예쁘고 정성이 담긴 선물이었다. 다시 한 번 이 여행을 기획한 상미회와 이상엽이사와 조영미과장, 그리고 터키 현지의 가이드로 수고한 자스민양 등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18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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