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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역사의 아시아 경기대회」
글번호  68, (조회 : 523)
글쓴이  서립규 날 짜  2014/11/21 (12:01)

9월 19일 낮, 아내와 영종도 인천공항에 인접한 Grand Hyatt 호텔에 짐을 풀도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 개회식에 가는 버스에 올라서 아시아 경기대회의 역사를 되돌아보았다. 1913년 극동게임이 Manila에서 시작되었고 1934년까지 거행되다가 중일전쟁 등을 겪으면서 1938년에는 대회가 취소되며 끝을 맺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새로 독립한 국가들이 아시아 경기대회를 갈망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기간 중에 인도의 Guru Dutt Sondhi가 새로운 아시아 경기대회의 창설을 주장하여 Asian Games Federation(AGF)이 발족하여 1951년 3월 제1회 대회가 인도의 Delhi에서 거행되었다(11개 국가 참가, 8개 종목에 489명 선수 참가). 우리나라는 6·25전쟁의 와중에서 첫 대회는 참가하지 못했고 1954년의 Manila의 제2회에 참가했다.
한국 팀은 단장 이상백, 총감독 정상희, 총무 이종구, 섭외 현정주, 공보 김재위, 의무 방현 등의 본부임원과 육상, 역도, 복싱, 레슬링, 축구에 출전하였다. 경기결과는 육상 1,500m(최윤칠), 10,000m(최충식)과 역도 유인호, 조봉목, 김성집, 고종구, 김창희, 복싱 박금현이 금(金)메달을, 축구, 육상 5,000m 최윤칠, 복싱 이삼용, 이장교, 레슬링 한덕흥, 역도 나시윤이 은(銀)메달을 육상 최영기, 복싱 김윤서, 레슬링 김영준, 임배영이 동(銅)메달을 획득했다(참가국 19개국, 일본이 98개의 메달(금ㆍ은ㆍ동), 필리핀이 45개, 한국이 19개 그 뒤로 파키스탄, 인도). 지금부터 꼭 60년 전의 일이다. 2회 때는 마라톤 종목이 없었다. 마라톤이 전문인 최윤칠(26세)이 1,500m에서 1위를 5,000m에서 2위를 획득했으며 태극기가 게양되었다.

인천에 새로 건설한 주경기장에서는 6시부터 식전행사가 시작되었다. 영화감독 임권택과 장진의 작품이다. 행사는 꿈이 모이는 곳, 친구가 되는 곳, 우리가 꿈꾸는 내일의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굴렁쇠 소년이 등장한다. 아 저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본 광경이 아닌가? 이어령의 작품이 왜 26년 후 또 인천 아시안게임에 나오나? 그 후 일본 군복을 연상하는 무리의 등장, 가죽가방을 옆으로 메었는데 우정국 배달부로 보이지는 않는다. 민비를 죽이려고 경복궁으로 쳐들어가는 일본군으로 보인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기수단에는 산악인 엄홍길이 끼어있다.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성화 점화일 것이다. 엉뚱하게도 연예인이 등장한다. 나는 60년 전 마닐라의 제2회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최윤칠의 등장을 기대했었다. 이 대회가 운동 경기 대회인데 연예인의 대회로 전락시켰는지 궁금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육상, 수영에서 한 개의 금메달도 따지 못하고 경기를 끝냈다. 더구나 마지막 날 벌어진 마라톤 경기에서는 남북 선수 모두 경쟁 상대가 못 되었다. 그러나 축구경기에서는 남북한 여자팀이 준결승전에서 그리고 남자팀은 결승전에서 대결하여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특히 인천시민 단체에서 조직한 남북한 공동응원단에서 북한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기에서 응원을 해주고 남북한이 대결하는 경기에서는 골고루 응원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세계신기록이 16개나 나오고 대회 신기록도 32개가 나와 역대 어느 대회보다 내실 있는 대회였다는 평가도 외신을 통해 많이 언급되었다. 그러나 국내신문 특히 인천지역의 매스컴에서는 초기에 불거진 ①성화 꺼진 것 ②경기장의 누수 ③도시락 변질 문제 등을 집중 보도하고 재탕 삼탕 하는 것을 보면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아시안게임 유치부터 10여 년간 인천에서 아시안게임 준비와 마무리를 위해서 소리 없이 뛰고 있는 상미회 대표 신용석 위원장을 몇 차례 만났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필자가 대회기간 중 우리나라 핸드볼과 함께했던 30여 명의 동료들을 초청하여 진흥각에서 만찬을 베풀고 있을 때 예고 없이 찾아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서로 보람 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 조정관 이현정 씨가 필자에게 최상급 AD카드 발급을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말을 남기고 싶다.

지난 60여 년간 필자는 핸드볼과 함께 지내왔다. 여자팀의 우승과 남자팀의 준우승, 상대방 카타르의 선수대부분은 유럽 선수 출신임에도 최선을 다한 우리 팀에 찬사를 보낸다.
전체 성적에서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대한민국이지만 이제 우리도 메달에 급급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육상이나 수영 같은 기본경기에 충실하고 스포츠발전의 범위와 저변을 확대해 나가는 명실상부한 스포츠 선진국을 지향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아시아에서 아시안게임이 시작된 지 100여 년 한 세기가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 보다 내실 있고 알찬 아시안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거대한 경기시설이나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 붓는 규모의 대회를 지양하고 보다 내실 있는 대회가 되었으면 한다.

서립규
대한핸드볼협회, 대한체육회 이사 역임(1963~2001),
우림콘크리트 회장, 상미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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