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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간의 이탈리아 기차여행
글번호  64, (조회 : 2384)
글쓴이  夫大珍 날 짜  2012/05/28 (21:02)
‘한 달간의 이탈리아반도 일주 배낭여행’ 얘기를 꺼내자 주위의 반응은 다채롭다. 나이, 건강, 음식, 시간, 돈, 짐, 교통, 날씨, 사고 등등 걱정거리가 태산이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와 다른 역사, 전통, 문학, 건축, 미술, 음악, 종교, 생활, 음식, 술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몸은 좀 축나겠지만 머리와 마음은 살찌겠지. 그래 떠나는 거다!


밝은 태양과 푸른 하늘의 나폴리

초고속 열차는 1시간 남짓 만에 나폴리역에 닿는다. 나폴리의 태양은 오늘도 밝게 빛나고 있다. 카세르타행 열차를 찾아 올라탄다. 낡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객차는 야릇한 옷을 걸친 젊은이들의 고성으로 가득하고, 열차가 떠나기도 전에 분주히 오가는 잡상인들로 혼란스럽다. 유로스타의 분위기와는 전혀 딴 판이다. 여행안내서의 나폴리편을 떠 올리며, 짐과 호주머니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카세르타 도착까지 기나긴 50분을 참고 견딘다. 1시간이면 충분한 여정을 3시간을 소비하며, 열차여행 첫날에 이탈리아 최고급 열차와 최저급 열차의 분위기를 경험한다.

카세르타 궁전(Caserta Palazzo Reale)의 아름다운 정원을 뒤로하고 다시 나폴리로 향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나그네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감청색의 바다 티레니아에 웅대한 베수비오 산을 배경으로 밝은 태양과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도시가 그림처럼 비친다. 어깨가 닿을 만큼 좁은, 돌 깔린 골목을 걸으며 2,500년의 도시를 체험하고 나폴리의 음식을 즐긴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박물과 미술관을 순회하며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하고, 이탈리아 회화의 진수를 본다. ‘나폴리를 보지 않고는 사랑도 인생도 예술도 논하지 말라’ 라는 말에 고개를 끄떡인다.

아말피(Amalfi)해안으로 들어서면 남국의 정서가 물씬 풍긴다. 레몬, 오렌지, 올리브나무로 뒤덮인 급경사의 산등성이에 달라붙은 듯 서있는 하얀 집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즐기고, 쉬는 것을 배운다. 해변을 거닐며 여행과 인생의 의미를 생각한다. 죽기 전에 한번은 가 봐야한다는 명소 중에서 으뜸인 곳 아말피. 티레니아해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로 만든 요리와 어우러진 라벨로(Ravello)산 백포도주가 음악과 함께 감미롭게 입안을 감돈다. 여행은 WINE & DINE이라고 하지 않던가!



바로크 건축의 아름다운 도시 레체

이탈리아반도 동남부 끝자락에 3,000년 된 아름다운 도시 레체(Lecce)가 자리 잡고 있다. 남부 이탈리아 최고의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한 이곳을 17세기 화려한 바로크 건축으로 단장되었다. ‘바로크의 피렌체’의 탄생이다. 1시간 동안 시내의 뒷골목을 도는 꼬마열차는 레체의 바로크건축에 대한 설명은 물론 지친 나그네의 다리와 마음을 쉬게 한다.

동화 속에서나 나옴직한 하얀 벽에 높은 원추형의 까만 돌지붕집(trullo)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 툴르리(trulli) 집락촌 알베로베로(Alberobello)의 숙소에서 옛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한다. “손님께서 이틀 동안 주무실 침대가 놓인 바로 이곳에서 61년 전 제가 태어났습니다.” 툴르리 민박(trulli B&B)을 운영하는 주인장의 설명이다.

마테라(Matera)에 들어서면 깊은 골짜기를 가득 메운 동굴집 사시(Sassi)가 어둠과 함께 섬뜩하게 다가선다. 외부와 동떨어져 힘들게 살아 온 농민들의 슬픔과 원망과 한이 젖어있는 듯 군집을 이룬 사시의 형태가 괴괴하다. 짓다만 듯한 130여개의 교회들이 동굴집들과 뒤엉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의 장면을 떠올리며, 그 옛날 수도사, 신도들 그리고 종교를 생각한다.

바리(Bari)에서 북부 이탈리아 교통의 요지 볼로냐(Bologna)까지 800Km를 아드리아해변을 따라 열차는 5시간을 달린다. 차창 밖을 스쳐가는 풍경을 보며 꿈을 꾼다. 먼 훗날 통일이 되면 부산에서 함흥까지 동해안을 달리는 열차가 꼭 이럴 것 같다. 먹거리가 제일이라는 에밀리아로마냐의 세 도시 볼로냐, 모데나, 파르마가 가까워지니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원초적인 욕구, 입맛이 발동한다.

볼로냐(Bologna)는 포르티코(회랑)의 도시다. 다양한 형태의 회랑들이 수십 킬로 이어져 도시 전체를 하나로 묶어준다. 건설시기에 따라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로 건축양식이 바뀐 회랑들이 조화를 이루고 또 시간의 흐름과 중첩을 알려준다. 먹는 일에만 정열을 쏟는다고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하지만, 풍부한 물산과 시민들의 진취적인 사상은 볼로냐를 미식의 도시로 자리매김한다. 포도주 잔을 손에 든 사람들로 가득 찬 선술집(Ostria)이 곳곳에 눈에 띤다. 먹거리의 본고장에서 틀로테리니(Tortellini)와 볼로냐 스파케티의 진미를 맛본다.

가수 파바로티가 태어난 곳 모데나(Modena)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두오모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이다. 수소문하여 찾아간 토속음식점에는 메뉴가 없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오면 여주인이 알아서 음식을 장만한다고 한다. 미슐랭 가이드북을 읽은 실력으로 점잖게 Lambrusco(스파클링레드 와인)와 Zamponi(돼지다리로 만든 소시지)를 주문한다. 여주인은 옆 테이블의 Lambrusco병을 집어 들고 우리의 잔에 가득 채워주면서, Zamponi는 겨울 음식이라고 낮은 목소리로 일러준다.

치즈와 프로슈트의 고향 파르마(Parma)는 대지휘자 토스카니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수준 높은 오페라 관객인 파르마 시민을 위하여, 이탈리아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극장 레지오(Teotro Regio)와 목조극장 파르네세(Teotro Farnese)가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다. 이탈리아 소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21세기 현대건축, 파가니니 음악당(The Auditorium Niccol Paganini)은 설탕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것이다. 파르마 시민들의 음악사랑이 어떠한지 잘 보여준다. 파르마는 음식의 도시가 아니라 음식과 음악과 건축의 도시다.



베네치아에서 듣는 비발디의 선율

이탈리아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물의 도시 베네치아다. 운 좋게 베네치아 고딕의 최고 걸작 카도로(Ca'd'Oro)의 바로 옆에 호텔을 정한다. 수상버스(Vaporetto)를 타고 고급 휴양지 리도, 유리의 섬 무라노를 오고가며 자유를 만끽한다. 13세기의 유리제품도 보고, 먹물 리죠토도 먹고, 클림트 특별전을 관람하고, 티치아노의 그림과도 만나고, 비발디의 음악도 듣고,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베네치아의 미로를 걷는다.

파도바(Padova)에는 장마처럼 비가 쏟아진다. 스크로베니 성당의 죠토(Giotto)가 그린 프레스코화를 보기 위해 비를 맞으며 2시간 반을 기다린다. 성모와 그리스도의 생애가 천장과 벽을 가득 메운 대작으로서 명작이다.

완벽에 가깝게 원형이 보존된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아레나는 베로나(Verona)의 얼굴이다. 아레나 외벽은 6월부터 열리는 오페라의 홍보 현수막이 걸려있고 내부는 무대 꾸미기가 한창이다.

천상의 도시 베르가모(Bergamo citta alta)는 케이블카(funicular)로 연결된다. 밀라노와 베네치아 양대 강국에 끼인 베르가모는 독자적인 문화를 개화시켜 르네상스의 이상도시를 실현했다. 4월의 꽃샘추위에 스웨타를 사 입고 따뜻한 옥수수죽(polenta)를 먹으면서 추억을 만든다.

밀라노에서 오랜만에 라파엘,카르바죠, 미켈란제로의 작품과 만난다. 도시의 크기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거대한 만토바(Mantova)의 두칼레 궁전과 테(Te)별궁을 들러보며 인간의 과욕이 아이로니컬하게도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6개월 전 홍수로 망가진 친퀘테레(Cinquetere) 다섯 마을은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다. 리구리아 해변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서 문명을 등지고 오순도순 소박하게 살아가는 마을이 문화유산이라는 미명하에 망가져가는 모습을 본다. 순박한 옛사람들의 자취는 오간데 없고, 메마른 거래만 활발하다.


피렌체에서 만난 우키요에의 대가들

꽃의 도시 피렌체로의 입성은 소매치기의 환영으로 시작한다. 칼도 뚫지 못한다는 트미(Tumi)핸드백의 이중 지퍼를 열고 현금만 빼가고 다시 이중 지퍼를 얌전히 닫아놓고 사라진 신기의 솜씨. 여권을 남겨놓고 갔으니 다행이다. 예술의 중심 도시에 왔으니 문화세(?)를 낸 셈 치는 거다. 우연인지, 마침 모든 문화시설이 문화주간이라 해서 입장료가 없다. 산 로렌초 교회의 미켈란젤로의 신 성물실을 들러보고, 산마르코 수도원에서는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피티(Pitti)궁전에서는 ‘야포니즘과 20세기 유럽’특별전을 관람한다. 히로시게(廣重), 호크쟈이(北斎)같은 우키요에(浮世絵)의 대가의 그림들을 이곳에서 만난다.

우리가 묵은 아레쵸(Arezzo)의 호텔 지배인이 마을에서 가장 맛있는 티본스테이크(Bistecca alla fiorentina)를 요리하는 식당을 소개한단다. 손가락 네 개를 겹쳐가며, 두툼한 티본스테이크의 두께를 실감나게 설명한다. 수퍼토스카나나 브르넬로디몬탈치노를 곁들이면 최고의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따라 우리는 토스카나 최고의 티본스테이크를 맛본다.

이탈리아반도 일주를 마치고 무사히 로마 도착이다. 티볼리(Tivoli)의 데스테별장(Villa D‘este)과 아드리아나별장(와 Villa Adriana)도 둘러보고, 로마의 중심부에 세워진 21세기 건축 아라파시스 박물관(Museo dell’Ara Pacis)을 방문하고, 인류가 만든 최고의 건축 판테온을 찾아 인사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세상을 거꾸로 사는 게 아닌가? 젊었을 때는 비즈니스 클래스에 도어투도어 서비스로 모시다가, 나이가 드니 비행기는 이코노미, 교통편은 기차 버스 지하철이고, 여행 중에는 로칼 와인 마신다고 모든게 하향조정이구료.” 푸념인지 자조인지 아내의 불평에 슬쩍 눈치가 보인다. 그래 오늘은 도어투도어 서비스다. 호텔에서 로마공항까지 택시를 탄다. 오랜만에 맑아진 하늘과 녹색을 머금기 시작한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산천이 우리를 배웅한다. 이렇게 70대 노부부 버전의 이탈리아반도 일주 5,000킬로 배낭여행의 막은 내린다.

어디선가 왔다가 어디론가 가야하는 인생도 결국은 여행이 아닌가.

AMALFI 카페에서 필자 부부

夫大珍 <尙美會 이사, 眞我建築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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