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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기
글번호  57, (조회 : 1210)
글쓴이  李基承 날 짜  2009/12/02 (11:55)
천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며 중세 유럽 최고의 관광 코스였던 산티아고 순례길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종교계 보다 등산객 사이에 입 소문이 퍼지며 한국인 참가가 서서히 늘어 2007년 순례길 관문에 신고된 한국인 수가 330명에 달했다. 중세에 연간 50만을 넘었던 순례객 수는 지금은 십분의 일 수준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예수 12사도 중의 하나인 성 야곱(라틴어Sanctus Iacobus; 英 St.James; 佛 St-Jacque)은 이베리아 반도에 와 포교활동을 하다 예루살렘 귀환시 헤롯왕에 의해 순교한다.

유해가 본인의 뜻에 따라 스페인으로 향하던 도중 배는 난파한다. 800년 후 그 유해가 스페인 북부의 들에서 한 사제에 의해 발견된다. 하나님의 계시가 별의 형태로 사제를 유해까지 인도하였기 때문에 발견 장소를 콤포스텔라(Campus Stellae; 영Plain of the Star)로 부르게 된다.

그 장소에 교회가 지어지고 이후 이슬람과 십자군과의 교전이 이어진다. 십자군이 불리할 때마다 성 야곱이 흰 갑옷을 입고 혜성처럼 나타나 전세을 역전 시킨다. 이로부터 성 야곱은 스페인의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하며 순례객 들이 줄을 잇는다.

11~13세기는 십자군의 시대이다. 십자군은 중동보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더욱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순례를 마치면 모는 죄과를 용서 받는다고 믿었던 당시의 성지가 로마, 예루살렘, 산티아고의 세 곳이었는데 그 중 산티아고가 압도적인 인기였다.

유럽 전역의 신자들이 프랑스를 거쳐 피레네를 넘게 되면 거미줄 같이 형성되었던 행로가 서너 갈래로 합쳐지게 된다. 워낙 교통량이 많아 여행관련업이 경로를 따라 발달 되고 특히 피레네의 프랑스 쪽 관문도시 쌩쟝 삐에르 드 뽀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산티아고까지 800km길이 ‘프랑스길(Camino Frances)’로 명명되며 교통량의 85% 정도를 소화 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대서양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북쪽길(Caminos del Norte)’ 등 모두 다섯 갈래의 순례길이 명명되어 있다.

순례객들은 출발위치에 따라 3~9개월을 계속 걷게 되므로 휴대 행장이라고는 지팡이와 샘물을 떠 먹기 위한 가리비 조개껍질 뿐이었다. 이 조개껍질이 산티아고 순례의 엠블렘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가리비를 쌩쟈크(St-Jacque)라 부르는 것도 같은 유래이다.

오랜 동안 피레네에서 산티아고 까지 800km 코스 완주를 계획해 왔었는데 무릎과 발목의 잦은 부상으로 계속 실행을 늦추어 오다가 금년에 드디어 도보 순례의 꿈을 접고, 집사람과의 드라이브 여행으로 대체하기로 하였다. 끝없이 걷고 또 걷는 극기와 고독의 시간을 포기한 대신 북 스페인의 절경(絶景)과 문화유적, 그리고 미식(美食)의 파노라마 유람을 택한 셈이다.

대서양 변 프랑스 국경도시인 비아리츠 에서 차를 빌려 ‘프랑스길’로 산티아고 까지 가서 ‘북쪽길’로 돌아오는 1700km 의 여정이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순례길이 바로 국도였으나, 경제발전이 본격화 되면서 지금은 초고속 도로망이 따로 들어섰다. 시속 130km 상한의(실지로는 평균 150km주행) 고속도로를 피해 옛 국도(평균 70km)를 택하면 순례객 들과 거의 같은 길을 지나게 된다.

구겐하임 미술관

순례길이 국도와 항상 평행한 것은 아니고 걷기 좋은 구간들과 달리기 편한 구간이 분화되는 만큼, 인도와 차도가 만나고 헤어지기를 매일 수십 차례 하게 된다. 지나치는 순례객의 대부분이 60이 넘어 보이는데, 가끔 젊은 여성들이 두어 사람씩 짝 지어 걷거나 싸이클링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직장인과 학생들은 휴가철인 6, 7월에 주로 몰린다고 한다.

스페인은 수 없이 많은 중소 도시로 이루어 진 나라이다. 영국인 셋이 모이면 클럽이 결성되고, 스페인인 셋이 모이면 도시가 형성된다는 속담이 있다. ‘프랑스길’ 도 3~40개 도시구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중 관광 매니아 들에게 익숙한 도시를 들려면 시발점인 St. Jean Pied de Port 부터 Roncesvalles, Pamplona, Logrono, Burgos, Leon, Lugo 와 종점인 Santiago de Compostela 등이 있고, ‘북쪽길’에도 La Coruna, Oviedo, Santander, Bilbao, San Sebastian 등이 포진하고 있다. 산업도시 빌바오만 제외하면 모두 인구10~20만의 남짓한 중소 도시들이다. 각 도시들이 저마다의 역사와 특색, 경관을 지니고 있지만 그 중 몇 달이 지나도 기억에 남고 또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 Burgos, Santiago 와 Santillana del Mar이다. 우연히도 이 세 도시는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권이다.

Burgos는 서고트어 에서 유래한 성채마을(burg)의 뜻이고 아를란손 강변의 군사목적 성채아래에 형성된 도시이다. 13세기 초에 건립된 대성당은 당시의 고딕 건축기술을 망라한 걸작으로서 톨리도와 세비야를 포함하는 스페인 3대성당 중 연대가 가장 앞선다.

기도의 도시, 학문의 도시, 비의 도시인 Santiago는 옛 성벽을 대체한 순환도로 안으로 차량 진입이 제한된다. 도심의 오브라도이로 광장에는 대성당과 Hostal dos Reis Catolicos(지금은 파라도르 호텔)가 나란히 위치한다. 수 세대에 걸쳐 재건축, 증축을 한 대성당의 지금 모습은 16세기 바로크 풍이다. 산티야나 델 마르는 산탄데르에서 30km 떨어진 인구 4천의 소도시 이다. 델 마르 라는 부칭과는 달리 해변에서는 충분히 떨어져 있다. 사람들의 옷차림만 아니라면 꼭 400년 전으로 타임 머신을 타고 간 것 같이 보존 된 마을이다.

리스칼 호텔 앞에서 필자

스페인 여행의 즐거움이 먹거리이다. 20세기 중반까지도 스페인은 경제적으로 유럽의 2류국가로 요리수준도 낙후 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재작년에 1인당 소득에서 스페인이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추월했듯 음식쪽에서도 비슷한 발전이 있었다. 펠레그리니 선정 세계10대 레스트랑 에 부동 1위의 엘 불리를 비롯 4개 식당이 3년 연속 오르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점심이 가장 중요한 식사이다. 대개 2시에 시작 4시반 쯤 끝난다. 저녁은 9시에서 11시 까지로 우리 한국인들은 두 끼를 양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감당할 수가 없다. 이럴 때 생존책이 타파스(Tapas) 바에서의 저녁이다. 타파스는 우리말로 안주이다. 생맥주 몇 순배, 또는 와인 몇 잔과 더불어 접시당 2~3유로의 일품 안주 두 세가지 곁들이면 꼭 알맞은 저녁이 된다.

스페인어로 맥주가 쎄르베사(Cerveza)인데 스페인인들은 자국맥주를 독일 위로 치부한다. 여행 중 거의 매일 저녁을 타파스 바 순방으로 보냈다.

앞서의 도시들을 예로하면 Burgos의 Sombrereria 거리의 La Cabana Arananda, Santiago의 La Bodeguilla de San Roque, Santillana의Los Blasones가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 다음 상미회 분들과 함께 스페인 여행 때는 필히 저녁 식사 두 세번은 타파스 바로 모셔야겠다고 다짐했다.

<尙美會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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