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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신사(神社: 진쟈)
글번호  51, (조회 : 9299)
글쓴이  夫大珍 날 짜  2008/03/09 (02:28)
일제강점기의 신사관람단, 강제로 지어졌던 남산을 비롯한 전국의 神社들, 해마다 한일간 외교 충돌을 일으키는 일본총리의 야스쿠니진쟈(靖國神社) 참배 등 우리에게 神社는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한 발짝 다가가면 일본의 많은 신사들이 우리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코마진쟈(高麗神社), 쿠다라진쟈(百濟神社), 시라키진쟈(新羅神社) 등 삼국의 국명을 그대로 쓰는 神社가 있는가 하면, 고대 한반도 계통의 신을 모시는 신사를 일본열도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尙美會의 큐슈(九州)여행코스에서 빠지지 않는 일본의 대표적 도자기 마을 사가(佐賀)현의 아리타(有田)시에도 우리와 친숙한 신사가 있다. 임진왜란 때 끌려가 아리타陶器(有田燒:伊万里燒)를 창시하여 陶祖로 추앙받는 李參平을 모신 곳이다.

多神의 토속종교 신토오(神道)와 無神의 佛敎가 어우러져 특이한 형태의 믿음이 일본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있다. 집집마다 신단과 불단을 차려놓고 자신이 모시는 신들과 함께 산다. 일본사람들의 인사하는 태도, 걸음걸이, 식사하는 모습은 수도승들의 행동과 유사함을 느낄 수 있다. 출산, 입학, 취직 등에 대한 기원과 결혼식은 진쟈(神社)에서, 장례식은 절(佛寺)에서 치루는 것을 보면 인생의 시작에서 끝까지 신토오(神道)와 불교의 가르침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쟈(神社)란 신토오((神道)의 신을 모시는 곳이다. 신토오(神道)에서는 모든 사물에는 정령이 있다고 믿는다. 죽은 사람은 신이 되고 영험한 물건, 커다란 나무, 큰 바위와 뒷산에는 신이 머문다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옛날 마을의 집단 제사장소가 다양한 신을 모시는 다양한 형태의 神社로 발전된다. 기둥 2개와 보 2개로 이루어진 대문, 일본문화의 상징의 하나인 도리이(鳥居)를 세우면 그 배후는 그대로 카미(神)의 영역이 된다.

도리이의 기원을 우리의 홍살문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일본삼경의 하나인 미야지마(宮島)해변의 이츠쿠시마진쟈(嚴島神社)는 만조 시에 본전(本殿)이 바다 위에 뜬 것처럼 보이면서 해중의 주황색 오오도리이(大鳥居)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도리이와 후지산(富士山)을 어떤 그림에라도 덧붙이면 영락없는 일본그림이 된다. 이렇게 강력하게 한나라를 상징하는 단순 명료한 아이콘은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神社는 중요도에 따라 神宮, 宮, 大社, 社 등으로 구분한다. 천황과 황실조상을 모시는 곳을 진구(神宮), 황족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 宮, 大社는 격을 대중소로 나누었을 때 대사 社格을 받았던 규모가 큰 神社를 가리킨다.

神社에서 신을 맞이하기 위하여 만든 건축물을 사전(社殿)이라고 하며, 초기에는 가설건물을 지어 제사를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最古·最大 神社인 이세진구(伊勢神宮)의 內宮正殿, 이즈미다이샤(出雲大社)의 本殿, 스미요시다이샤(住吉大社)의 本殿에 토대가 있는 것으로 봐서, 社殿의 원형은 현재의 마쯔리(일본의祝祭)때 메는 미꼬시(神輿)와 같은 형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전(社殿)의 옛 형식이 가장 잘 전해지고 있는 곳이 內宮과 外宮 2개의 신사로 이루어져있는 이세진구(伊勢神宮)이다. 일본천황의 선조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모시는 사전이 내궁의 정전이다. 內宮은 남북으로 긴 형태의 대지에 정전과 그 북쪽에 두 채의 보전(寶殿)을 세우고, 이들을 사중의 울타리가 에워싸고 있다. 正殿은 무나모찌바시라(棟持柱)라고 하는 두 개의 육중한 기둥이 용마루를 지지하고 있고, 남쪽 주랑에 입구가 있는 히라이리(平入)형식이다.

판벽에 지붕은 띠로 이었고 용마루 위에는 가쯔오기(堅魚木)라는 10개의 통나무를 직각으로 얹어 놓았다. 용마루 양 끝에는 치기(千木)라는 단부가 갈라진 부재가 지붕을 뚫고 뻗어 나와 있고, 마루는 여러 개의 짧은 기둥으로 떠받쳐진 高床構造이다. 형태와 외관이 동남아의 원시주거·창고와 유사한 것으로 봐서, 고대부터 일본열도가 한반도 뿐 만 아니라 남방과도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독특한 모양의 치기(千木)는 1960년대 부여박물관 건립 시 외관의 표절·모방·차용 시비로 우리나라 건축계를 시끄럽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이세진구(伊勢神宮)의 최대 행사는 1300년의 역사를 가진 시키넨센구(式年遷宮)다. 20년에 한번씩 신이 사용하였던 옷, 장신구와 보물 등을 재정비하여, 以前의 건물과 똑같이 신축한 正殿에 안치하여 신의 거처를 옮기는 의식이다.

기존의 내궁 옆 같은 크기의 대지에 정전을 신축 천궁 하여 새로운 내궁을 완성한 후, 기존의 정전을 해체하고 기존의 內宮 터를 공지로 남겨 교대로 대지를 사용한다. 正殿을 신축. 천궁, 해체하는 거듭되는 과정에서 옛 형식이 거의 정확하게 전달된다. 이 행사를 통하여 일본의 전통문화와 기술의 계승이 이루어진다. 62번째 천궁이 2013년에 있을 예정으로 그 준비를 위한 의식과 축제가 한참이다. 무엇이든 계속한다는 것 즉 연속성·영속성이 얼마나 큰 자산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한국 여행단이 자주 찾는 닛코오(日光)의 도쇼구(東照宮)는 도쿠가와바쿠후(德川幕府)의 창시자 도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의 묘소임과 동시에 신격화된 그의 혼령을 모시고 있어 靈廟라고 부른다.

17세기 일본의 디자인과 기술의 수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예로서, 정교한 동식물조각과 화려한 채색은 호화찬란한 일본의 바로크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근래에 일본총리의 참배로 한일, 중일간의 외교 분쟁의 초점이 되는 곳이 야스쿠니진쟈(靖國)다. 유신에 성공한 일왕 메이지(明治)가 도쿠가와바쿠후(德川幕府)와의 전쟁에서 숨진 7,750명을 추모하기 위해 1869년에 호국신사 도쿄쇼콘사(東京招魂社)를 세웠고, 10년 후 야스쿠니(靖國)로 개칭한 곳이다.

그 이후 청일전쟁, 노일전쟁, 만주사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등 일본이 외국과 벌린 주요 전쟁에서의 전사자를 포함 246만 여명의 위패를 모신 신사다. 1978년 도죠히데끼(東條英機) 전 총리 등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14명을 合祀하면서, 전범에 대한 일본정부의 총리나 각료의 공식참배가 주변국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건축의 역사를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건축이 항상 그 중심에 서서 다른 건축을 선도한다. 특히 심오한 세계관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대륙의 불교건축은 일본의 토속종교건축인 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츠쿠시마진쟈(嚴島神社), 도쇼구(東照宮) 그리고 단순미의 극치라고 칭송되는 이세진구(伊勢神宮)와 같은 수준 높은 神社건축은 불교건축과 더불어 일본종교건축을 대표하게 된다. 일본의 역사, 종교, 사회, 문화, 예술과 건축을 논할 때 신사는 빠뜨릴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尙美會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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