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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차 尙美會 응접실

· 작성자 · 등록일2015-08-21 · 조회614

건설 한국의 현장에서 오대양 육대주를 뛰어다니며 대형건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수주하며 현장에서 지휘했던 김현중(金玄中•64) 한화건설 고문이 금년 2월 尙美會의 인도 여행에 참가하고 이어서 8월에는 스칸디나비아 3개국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나라의 해외건설 업계의 산 증인이자 건설 한국의 대표주자이기도 한 김 고문을 통해서 해외건설의 비화와 尙美會 여행의 소감을 들어보았다.
신용석: 『김현중』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건설업계에서는 이라크의 100억 달러 신도시 계획 수주를 연상합니다. 언제부터 건설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까?

김현중: 서울대학 건축과를 졸업한 후 1976년 7월 대우건설에 입사해 건축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롯데호텔과 광화문 교보빌딩 신축에 참여해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건설인으로의 꿈을 펼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 해외 건설에도 초기부터 진출했던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김: 1981년도부터 리비아에서 대우건설이 15억 달러짜리 주택 1,000세대와 학교 교실 2,500개를 짓는 공사를 수주하면서 현장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면서 힘들 때도 많았지만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당시 카다피 리비아 지도자의 국토개조 꿈으로 전국 각지에서 토목과 건설 사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 대우라고 하면 리비아 국민들이 모두 알 정도로 성심 성의껏 일하던 기억이 납니다.

신: 영국 런던에서도 오랫동안 근무하셨었지요?

김: 80년대 우리나라 건설 회사들은 중동과 아프리카 건설 현장에서 필요한 자재들을 주로 유럽 각국에서 구매했었습니다. 저는 런던에서 대우건설이 공사현장에서 필요한 자재들을 구입하고 자금조달을 위해서 금융계와도 자주 접촉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건설 프로젝트 수주업무를 위해 뛰어들었습니다. 그 후 1987년부터 88년까지는 홍콩에서 중국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신: 그 당시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십시오.

김: 대우건설에서는 80년대 후반부터 하노이와 베이징에 호텔을 짓고 이들 호텔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호텔 체인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베이징의 캠핀스키 호텔과 하노이의 대우호텔 건설을 맡으면서 대우건설이 건물만 짓는 회사가 아니라 호텔사업을 통한 국위선양과 외화 획득이라는 일석이조의 사업을 추진할 때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신: 미국 쪽에도 진출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세계적인 부동산 개발 전문가로 알려진 도널드•트럼프씨와 뉴욕 맨하튼 유엔본부 앞에 트럼프 월드 타워 신축과 분양에 대우건설이 파트너로 함께 했었습니다. 미국의 심장부 뉴욕에서 트럼프씨와의 합작사업이 많은 애로를 극복하고 예상 이외의 수익을 올렸습니다만 IMF 사태가 터지고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수포로 돌아간 것이 아쉽게 생각됩니다.

신: 그 후 한화건설로 자리를 옮기셨지요.

김: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의 제의를 받고 고심하다가 대우 김우중 회장의 내락을 받고 한화건설 사장으로 일했습니다. 한화건설에서는 인천의 에코•메트로 계획에 따른 12,000세대 신도시 건설과 2012년 수주한 이라크의 100,000세대 신도시 건설 수주가 보람 있던 일이었습니다. 이라크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의 분당 신도시 규모의 세계 최대의 단일 토목•건설 프로젝트입니다.

신: 40여 년에 걸친 해외건설의 증인답게 해외여행도 많이 한 입장에서 尙美會 여행에 참여하게 된 동기와 소감은 어떠했는지요?

김: 尙美會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주변 친지들로부터 듣고 있으면서 언젠가는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우와 한화에 있을 때의 건설 업무를 위한 여행에서는 그 나라의 역사•자연•문화•예술 쪽을 제대로 살필 수 없었지만 尙美會 여행을 통해서 좋은 분들과 수준 높은 길잡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 그 동안의 공간을 메꾸어 나가는 기분입니다.

신: 앞으로 尙美會 여행에 계속 참여해 주시고 조언을 주십시오. 좋은 말씀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