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특징여행문의여행후기참가신청갤러리
 
  • 상미회 소개
    • 상미회 소개
    • 상미회 연혁
    • 임직원 소개
    • 상미회 여행의 특징
    • 상미회 회원제도
    • 국외여행 표준약관
    • 첫 여행사고
    • 관련기사
  • 여행상품
    • 전체 여행상품
    • 참가신청
  • 여행문의
    • Q & A
    • F A Q
  • 조갑제 칼럼
  • 신용석 코너
  • 회원마당
    • 여행후기
    • 응접실
    • 갤러리
    • 자유게시판
 
  회원마당 > 응접실

기사 확대  기사 축소
51차 尙美會 응접실
나의 조부 백하(白下)옹
이번호 응접실에는 尙美會 초창기부터 여행에 참여하시고 자문위원을 맡고 계시는 금진호(琴震鎬) 님(전 상공부 장관·현 텔코경영연구원 회장)의 옥고(玉稿)를 게재하기로 했습니다.
경제 개발시기에 수출업무를 총괄했던 상공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거쳐 상공부 장관을 역임한 금 장관은 『나의 조부 백하(白下)옹』이라는 글을 통해서 조부님에 대한 흠모의 정과 숭모의 마음을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나의 조부는 증조부가 24세 때 액병이 유행하여 마을을 휩쓰는 바람에 요절하시고, 유복자와 진배없는 갓난아기 때 단 한 분의 핏줄로 대를 이었으며, 편모슬하에서 귀하신 외동아들로 극진한 보호 아래 성장했으니, 우리 통념으로 볼 것 같으면 버릇없고, 유약(柔弱)하며, 쓸모가 적은 사람이 될 공산이 컸지만, 사실은 이와 정반대였다. 어릴 적부터 효심이 뛰어나고 근검 성실하며, 재기(才氣)가 있어 서당에서 한문과 서예를 익혔으며, 가사를 챙기면서 장성하여 슬하에 6남 1녀를 두셨다. 전통농가에서 자라나신 분이었지만,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을 갖추어 언젠가는 탈농촌 하여 도시로 진출하고 비농업 분야로 개척해 나가야겠다는 집념을 불태웠었다.
 
  농촌의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면서 아들 형제를 대구로 유학시켜 대구 농림 대구공업에서 1인 1기 기술을 습득하게 하여, 그 분야로 진출하게 하였다. 신체가 건장하고 농사일에 능숙한 분은 가업인 농사일을 이어가게 하셨다. 그 어른의 용기 있는 개척정신으로 우리 집안에 중흥의 역사가 창조되어 그 다음 세대는 농촌을 떠나 모두 각 계 각층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발판이 그때 마련된 셈이다. 나는 그 어른 기일에 추모하는 행사가 있을 때는 그 어른을 우리 집안의 세종대왕에 비유할 위인이시라고 말하면서 그분에 대한 존경심을 가족들에게 고취시키고 있다. 나의 조부 본인의 인생은 교과서적인 것으로 가정경영과 가족 사랑에 충실하시고 근검 절약하시며, 정도가 아니면 밟지를 않는 강직함을 고루 갖추신 완벽한 선비정신으로 일생을 일관하시었다.
 
  이 어른이 89세에 생을 마감하셨는데 80세쯤에 이르렀을 때, 아무도 모르게 아래에 소개하는 七言詩를 지어서 이를 친히 묵필로 쓰시고, 들판에 버려져 있는 화강암 돌을 다듬어 당신이 거기에 손수 각(刻)을 하여 비석을 완성한 후에는 당신 생전에 남의 눈에 띄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작업하던 밭 모퉁이에 글자가 보이지 않게 엎어두어 남겨둔 것이다. 조부 사후에 이것이 발견되어 그 어른 묘소 상석 앞에 그 화강암 시비를 세워두었다. 많은 세월이 지난 2000년 8월에 내가 보기에 너무 오랜 세월 풍화를 겪으면서 원본 글씨가 훼손될 것 같은 걱정이 생겨 이것을 탁본(拓本)한 후 오석에 재현시켜 다시 묘소 앞 적당한 공간에 설치하여 놓았다.
 
  白下田翁自銘 : 農者 白下 늙은이가 스스로 기록하다.
  其讀也不及收功 : 그는 글을 읽었으되, 공을 거두기에 미치지 못했고,
  其耕也不過湖口 : 농사짓는 것이라해도 겨우 먹고지내는 데 불과했다.
  其生也無益於世 : 살아서는 세상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고,
  其死也無聞於後 : 죽어서는 뒷날 그에 대해 들리는 바 없었다.
  生長老近於八旬 : 태어나 자라고 나이 들어 어느덧 여든에 가까워도
  做何事何業之有 : 무슨 일 무슨 업적을 이룩한 것이 있으리오.
  生與死不免愧怍 : 살아서나 죽어서나 부끄러움을 면할 수 없고.
  只作榜山土一杯 : 다만 방산에 흙 한줌이 되고 말았네.
  白下 : 조부님 아호 榜山 : 묻힌 산 지명

 
  2000년 재생시킨 비석 뒷면에는 이렇게 적었다. 「이 詩文은 白下 昌字燮字 祖父主께서 自作, 自筆, 自刻하여 남긴 것으로 花崗岩 原石이 風化로 毁損되어 가므로, 이를 筆寫한 후 烏石에 再現시켜서 崇慕하는 祖父 主의 人生哲學을 後孫에게 전하고자 새로 이 碑를 세우다. 2000年 8月 孫 震鎬 記」 한시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작품성을 가늠할 능력이 없어 지인인 한학자에 보여 드렸더니 수작에 속한다고 칭찬해주었다. 내 면전임을 고려하더라고, 독학하신 외동아들로 대단하시다고 느껴지고 무욕의 경지에서 인생을 담담하게 관조하신 어른의 철학은 감동을 주고도 남는다고 본다.
 
  조부와 나와의 또 하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에게 크나큰 교훈을 남기신 조부께서는 어릴 때부터 유순하며 말썽부리지 않고, 학업에 충실한 손자를 특별히 사랑하셨는데, 과장 시절 휴가로 귀향하여 조부를 문후하였을 때였다. 한번은 조용히 불러 앉게 하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너는 혹 관청에서 입신(立身)할지도 모르는데, 벼슬은 차관까지만 간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 옛날로 치면 참판이니, 그것으로 족하고 장관은 국사에 책임을 지는 막중한 자리니 행여라도 탐내지 마라. 그릇에 물이 가득 차면 엎질러지기 마련이다.” 너는 장관까지 갈 인재가 못되니 자기 분수를 알라고 미리 말씀하신 뼈 있는 교훈같이도 들렸다. 다음 말씀은 신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야소교(예수교)는 믿으면 아니된다. 야소교는 조상제례도 모시지 않는 부도덕한 종교니라 그리고 폐가망신하기 쉽다. 그 당시 농민들을 현혹시켜 과도한 헌금을 강요하는 사이비 종교가 유행하던 폐단을 지적한 것이었다. 끝으로 한 말씀 더 하신다. “행여라도 후일 국회의원에 나설 생각일랑 아예 말아라. 선거에 나서면 상대방이 경쟁자의 조상 삼대의 흉을 다 털어내기 마련인데 효도는 못 할망정 조상을 욕보이게 하는 짓을 해서야 되겠느냐”였다.
 
  상대후보의 단점을 사실이든 아니든 크게 들추어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 지난날 선거풍토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또한 조부님 인생철학과 맞지 않는 정치판에 아끼는 손자가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는 것을 걱정해서 말씀하신 것으로도 들린다. 세월이 흘러간 뒤 나는 이 세 가지 교훈을 하나도 지켜드리지 못 하였다. 조부님 묘소에 엎드려 고백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말씀하신 유훈을 한 가지도 지켜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장관자리를 거쳐오기는 했지만 나라에 책임질 큰 과오는 저지르지 않았다고 회고되며, 하나님을 섬기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선조들의 기일에는 경건하게 추모예배를 드려 조상숭배의 참뜻은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도 한 번 하고 끝냈는데, 선거 때는 워낙 경쟁자 보다 앞서 가는 분위기여서 상대측에서 굳이 내 조상에 대한 험담은 한 일이 없었고, 오히려 훌륭한 조상 덕에 득표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웃어넘겨 주시옵소서.”
 
  평생을 사시며 주변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세상 적 욕심을 버리고 바른길만을 택하여 사시면서 오로지 자손의 영광과 발전을 위해 희생하신 나의 조부 昌자 燮자 어른은 비범한 위인이셨음을 확신하고 숭모의 정을 이어가며 살고 있다.
  2017-08-04
    50차 尙美會 응접실 이전글
    53차 尙美會 응접실 다음글